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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동남권신공항의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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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

항공의 대중화 시대를 맞아 주민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공항의 조건은 무엇일까. 일단 공항은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규모가 크고 많을수록 좋을 듯하다. 지역마다 공항을 유치하고자 하는 이유다. 그런데 과연 신공항 건설이 이 지역의 항공교통에 긍정적이기만 할까. 서비스의 과잉이 시장 기능을 저해하는 불편한 진실은 없는 걸까.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 당초 군(軍)공항인 광주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건설됐다. 막상 개항이 다가오면서 광주공항 폐쇄에 대한 주민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승용차 30분 거리에 두 개의 공항이 운영되기 시작했고 여객은 분산됐다. 두 공항 모두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고, 줄어든 항공편수로 인해 여행객들은 지금 항공사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양양공항 역시 강릉과 속초의 군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2002년 개항했다. 신공항 검토 당시 두 지역 간에도 유치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중간지점인 양양군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한 시간 이내의 여객수요는 거의 유입되지 않았다. 지금 양양공항은 시즌 때마다 취항하는 전세기편을 제외하면 개점휴업 상태다. 그리고 강릉과 속초 지역에는 지금 항공교통이 없다. 울진에는 공항이 아닌 비행장이 있다. 1000억원 넘는 돈을 들여 공항을 건설했으나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었다. 결국 개항을 미룬 끝에 2010년 민간조종사 교육장소로 용도 변경됐다. 항공수요의 특성을 간과한 국책사업의 참담한 결과다.

 최근 동남권신공항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백지화된 국책사업. 정말 재고할 만한 것인가. 이미 경험했던 사례들에 해답이 있다. 대체수단과 접근성의 선택에 민감한 항공수요를 제대로 이해하면 거기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무거운 짐을 휴대하는 여행객에게는 공항의 접근성이 우선이다. 갈아타는 번거로움 역시 민감한 불만사항이다. 한때 일본의 여행객들이 나리타공항을 포기하고 인천공항으로 몰린 적이 있다. 국제선이 있는 나리타공항으로 가기 위해 일본 각지의 여행객들이 국내선으로 도쿄의 하네다공항에 도착해 다시 전철로 한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 것보다는 아예 출발지에서 곧장 인천공항으로 와서 국제선을 타는 것이 더 편리했기 때문이다.

 동남권신공항 건설은 당초 김해공항의 예상되는 수용력 부족과 안전성에서 출발했다. 세 차례 대선 때마다 지역의 공약이 됐다. 10조원을 상회하는 이 국책사업에 대한 지역사회의 입장은 1300만 명에 달하는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허브공항에 대한 기대감이다. 문제는 동남권신공항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는 점이다. 과연 대구·울산·포항·사천·김해의 지역주민들이 모두 현재 이용하는 공항을 포기하는 대신 신공항을 선호할 것인가. 수요분산으로 기존의 5개 공항이 폐쇄되거나 운항이 줄어든다면 결국 동남권역에는 수혜자보다 피해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서비스 세계 1위의 인천공항 역시 허브공항으로는 갈 길이 멀다. 세계 55개국의 176개 도시를 90개 가까운 항공사가 바쁘게 오가는 글로벌 공항이지만 환승률은 여전히 20%를 밑돈다. 동남권역의 항공수요를 한곳에 모아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허브공항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환상일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항공수요를 감안하면 김해공항에 대한 해결방안을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 문제의 출발점에서 보면 해법은 간단하다. 공항의 안전성을 해결하고 수용력을 확대하는 범위에서 대안을 찾으면 된다. 기존 공항의 확장이나 제2의 대체공항 건설에서 대안을 찾는다면 적어도 지역주민들의 항공교통 편익을 저해할 우려는 없을 것이다.

허 희 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