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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후보자의 손수운전 파격 신선하긴 한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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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나의 첫 승용차는 국내 최초의 경차 티코였다. 벌써 20여 년 전이다. 티코를 타고 안 돌아다닌 데가 없었다. 대리운전이 요즘만큼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한 번은 서울 방배동 식당에서 취재원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으로 티코를 몰고 갔는데, 식사 자리가 그만 거나한 술자리로 변해버렸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주인에게 차 열쇠를 주며 대리기사를 부탁했다. 주차장으로 가 보니 티코 운전석에 앉은 기사의 표정이 꽤 뜨악해 보였다. 작은 차라고 무시하나 싶어 일부러 뒷좌석 오른편 상석에 턱 앉았다. 기사님이 심란한 얼굴로 한마디 툭 던졌다. “사장님, 저 티코 대리운전 처음입니다.”

 보통 승용차에 운전기사가 있는 경우 조수석 뒤, 운전석 뒤, 조수석의 순서로 상석이 정해진다. 차 주인이 운전자일 경우엔 조수석, 조수석 뒤, 운전석 뒤의 순으로 앉는 게 예절이다. 군용 지프는 지휘·감독에 편리한 앞자리 조수석이 상석(선탑자석)이다. 치마 입은 여성이나 도중에 먼저 내릴 사람을 배려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때도 많다.

 서열과 의전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웃어른이나 상사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다.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조각 때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발탁된 이창동씨는 출근 첫날 검은색 레저용 승용차 싼타페를 손수 몰고 와 화제가 됐다. 오지철 문화관광부 기획관리실장이 조수석에 앉아 동행했다. 당시 언론에는 오 실장 이름만 등장하는데 알고 보니 승용차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문재인씨의 자서전(『문재인의 운명』)을 보면, 이창동 장관은 당연히 자기 차로 출근하는 것으로 알고 손수운전으로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에 가서 국무총리에게 취임 신고를 했다. 그사이 문화관광부는 난리가 났다. 박문석 차관과 오지철 실장이 장관 승용차를 갖고 부랴부랴 중앙청사에 갔다. 이 장관의 차는 사람을 시켜 옮겨놓겠다고 했지만, 장관은 “내 차는 내가 운전해야 한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관과 실장만 장관 차를 타기도 민망한 노릇이라 결국 함께 싼타페에 동승해 문화관광부로 갔다. 청사 도착 후 박문석 차관은 기자들을 피해 뒷좌석에 숨어 있다가 늦게 내렸다고 한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홍원씨가 8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을 옆자리에 태우고 손수운전을 하는 모습이 신문에 일제히 실렸다. 총리실 의전차량으로 모시러 갔다가 졸지에 차를 얻어 타게 된 임 실장은 10년 전 박문석·오지철씨처럼 난감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손수운전 파격이 신선하긴 하지만, 너무 잦으면 의도하지 않은 불편을 끼치게 된다. 역시 예(禮)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게 최상이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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