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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후보자 아들도 병역 면제…적법하면 문제 안 삼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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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호 03면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8일 오전 지명됐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박근혜 위원장과 정홍원 당시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이 나란히 입장하는 모습. [뉴시스]

“잘 아는 사람, 그것도 직접 데리고 일해본 사람만 쓴다. 일단 낙점하고 나면 확실하게 밀어준다.”

정홍원 총리 후보자 지명 계기로 재확인된 박근혜 ‘인사 마인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공식’을 압축한 말이다. 박 당선인이 8일 지명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와 청와대에 입성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은 모두 지난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과 함께 일해본 사람들이다. 전혀 몰랐어도 함께 일하면서 능력과 겸손함이 확인되면 과감하게 기용한다. 인수위 회의 때마다 “헌법, 법치, 질서”를 되뇐다는 박 당선인답게 법조인 선호 경향도 재확인됐다.
이는 정 총리 후보자에 앞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거의 일치한다. 정 총리 지명자는 지난해 1월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직후보자 추천위원장에 지명되기 전까지 박 당선인과 인연을 쌓은 적이 없다.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박 당선인은 2009년 공개석상에서 두 차례 만난 게 전부인 김 위원장에게 대선 공동 선대위원장, 인수위원장을 연달아 맡긴 뒤 총리 후보자로까지 지명한 바 있다. 중앙SUNDAY는 새누리당 관계자들을 통해 김 위원장의 지명·낙마 과정에서 나타난 박 당선인의 ‘인사 마인드’를 짚어봤다. 이를 통해 향후 고위직 인사가 어떻게 이뤄질지 예측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외부의 의혹 제기에 크게 신경 안 써
새누리당 관계자에 따르면 박 당선인은 김용준 전 후보자의 재산내역과 아들들의 병역관계를 나름대로 파악한 뒤 확신을 갖고 끝까지 낙마를 막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김용준 위원장은 지난달 중순 박 당선인이 “총리직을 맡아달라”고 제의하자 “적법하게 처리된 것이긴 하지만 아들 둘이 다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사실이 거론되는 자체가 문제 될 수 있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재차 총리직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아들 둘이 병역면제를 받은 사실이 문제돼 대선에서 연패한 이회창 전 총리 사례를 들며 다시 고사했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케이스가 다르다”는 취지로 일축해 김 위원장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이후 김 위원장에 대해 연일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했지만 박 당선인은 김 위원장에게 이와 관련해 질문을 하거나 거론한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언론 보도로 인해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하면 박 당선인은 “문제 없다”를 재삼 강조했다고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정홍원 총리 후보자도 아들이 서울대 박사 과정 중 디스크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을 들며 총리직 수락을 주저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김 위원장 사례에서 보듯 박 당선인은 ‘적법하게 이뤄진 병역 면제는 아무 문제 없다’며 일축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언론 하마평보다 자체 검증 중시
지난달 3일 밤이었다. “(인수위원 후보자인) 이혜진 동아대 로스쿨 교수의 평판을 알아봐 달라”는 박 당선인의 전화를 받은 김 위원장이 청력 장애 때문에 큰소리로 되묻는 과정에서 이 교수의 이름이 흘러나가 이튿날 중앙일보에 보도됐다. 새누리당 관계자에 따르면 아침에 신문을 본 김 위원장은 박 당선인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그런 내용이 보도된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김 후보자에게 상황 설명을 들은 뒤에도 “우리가 못할 말을 했나. 신경 쓰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몇 시간 뒤 발표된 인수위 인사 명단엔 ‘이혜진 위원’이 사회안전분과 위원으로 들어있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혜진 위원에 대해선 김 위원장과 새누리당 율사 출신 인사들이 출신지인 부산의 법조계로부터 평판을 직접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의 한 법대 교수로부터 “이혜진 변호사는 대단한 인물이다. 안철수 전 교수 5명을 갖다 놓아도 이 변호사를 당할 수 없을 것”이란 평도 들었다고 한다. 이런 검증 끝에 박 당선인이 이 위원을 낙점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언론에 하마평이 나돈 인사는 쓰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지만, 자체 검증을 통과해 쓰기로 마음먹은 인사는 사전에 내용이 흘러나가도 쓴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 총리 지명자는 장관 인선 과정에서 후보자 검증에 좀 더 여유를 갖고 임할 수 있으리란 추측도 나온다.

“잘 아는 사람만 쓰면 인재풀 제한”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연일 이어지는 언론의 의혹 제기에 마음고생이 컸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고민 끝에 지난달 29일 낮 박 당선인에게 총리 후보자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무슨 잘못을 했느냐”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김 위원장이 계속 “사퇴하겠다”고 고집하자 박 당선인은 “하루만 참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렇게 박 당선인이 승낙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저녁 7시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사퇴 발표를 강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의 가족들이 “오늘 사퇴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압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박 당선인은 “나도 갖은 어려움을 다 견디며 버텼는데 김 위원장이 여기서 물러서면 어떡하느냐”고 강하게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인수위원장 거취는 박 당선인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고 박 당선인은 그만둘 이유가 없다며 계속 자리를 맡도록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사퇴한 다음 날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근거 없는 기사는 쓰지 말아 달라”는 자료를 발표한 것도 박 당선인이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의 문제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문했기 때문이라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이렇게 한번 쓴 사람을 끝까지 쓰는 인사 마인드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지명자에게서도 확인된다. 김 지명자는 육순 나이인 2008년 총선 무렵 박 당선인과 처음 만난 사이였다. 하지만 안보전문가 능력을 인정받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 당선인과 자주 대화한 게 목격됐다. 지난해 12월 대선 선대위 국방안보추진단장에 이어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를 맡았고, 다시 안보실장 후보자에 지명됐다. 박흥렬 경호실장 후보자는 박 당선인이 직접 함께 일해본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육군참모차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육참총장이던 김장수 안보실장 지명자와 함께 20개월 남짓 육군 개혁을 주도한 이력이 있다. 이때 박 지명자의 능력을 높이 산 김 지명자는 이후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자 박 지명자를 육참총장에 기용할 만큼 찰떡궁합 사이라고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김 지명자에게 박 지명자의 평판을 들어본 뒤 낙점했을 것”이라며 “1차적으로는 본인이 함께 일하면서 검증한 사람을 쓰되 차선책으론 신뢰하는 측근이 데리고 일했던 사람을 쓰는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이 재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김 총리 후보자 낙마와 정 총리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나타난 ‘박근혜 인사 코드’는 한마디로 잘 아는 사람만 쓴다는 것이어서 인재풀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너무 개인적인 평가에만 의존하지 말고 외부 조언을 통해 인재를 찾는 개방성과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능력은 있지만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인물을 선호하는 건 본인의 국정 장악력을 높이되 총리에겐 실무 총괄을 맡기겠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관계자는 “인사에서 드러난 박 당선인의 이미지는 ‘외로운 1인자’”라면서 “수첩에 수백 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 해도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 검증의 벽을 무난하게 넘어설 인물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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