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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정관념」을 헤쳐본다|아들 낳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현대의 의학도 태아의 성별을 가리는 일에는 무력하다. 신비로운 상상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아기에게 「남자가 되라」거나 「여자가 되라」는 명령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조물주나 할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일에 얼마나 우직한 고민들을 하고 있는가. 선량한 인류 학자들이나 종교가들은 그러나 「현대 의학의 무능력」에 박수를 보낼지도 모른다. 만일에 태아의 성이 뜻대로 명령될 수 있다면 인구의 구조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며 그런 악순환은 역사와 함께 거듭되었을 것이다.
우선 여성의 수는 남성의 3분의 1쯤이나 되었을까 말았을까. 그로 인해 벌어졌을 상황은 우리의 상상을 다채롭게 만든다. 그것은 비통한 희극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인들은 모든 아버지나 어머니가 전해주는 산아의 소식에 우선 성별을 묻는다. 그리고 축하의 말을 적당히 안배한다.
우선 득남의 소식에는 굉장한 찬미를 아끼지 않는다. 「영웅호걸」의 부모에게 주는 찬사에 가까운 흥분마저 가누지 못하며.
그러나 득녀의 경우는 얼마나 측은한 표정으로 동정들을 아끼지 않는가. 『아 뭐, 요즘이야, 딸들이 아들 구실을 합디다』. 『달덩이 같이 키우시기를…』 아니면 『기르기야 딸이 더 재미있지』하는 식의 말까지 동원된다. 물론 그런 대화 속엔 은근한 위로의 말들이 웅크리고 있다. 「득남 턱」은 있어도 「득녀 턱」은 없는 것이 또한 세속이다. 아들만 많은 것은 참을만해도, 딸만 있는 것은 못 견딜 일로 안다.
그런 「난센스」를 사회는 불문율로나마 제도화까지 하고 있는 현상은 오히려 야만스럽다. 득남에게 주는 상여금과 득녀에게 주는 상여금 차이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인종 전쟁은 있어도 성별 전쟁은 없는 인류 역사가 면면히 엮어지고 있다. 그처럼 많은 아들들이 한결같이 영웅호걸에의 환상을 만족시켜 주리라는 약속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있으며 그것이 개선되리라는 공약은 아마도 할 수 없다.
「득남의 고민」을 풀 수 있는 단 한가지 열쇠는 고정관념을 허물어버리는 것, 하나뿐이다. 딸만 다섯을 둔 어느 노파의 투고는 이런 흐뭇한 얘기로 엮어져 있었다. 『저것들 중 어느 하나가 없었던들…』하는 생각은 상상만 해도 섬뜩하다. 모두들 저마다 그만한 기쁨과 그만한 고뇌와 그만한 보람들도 자라났다. 이제 우리 (노부부)에게는 조용히 세상을 마치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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