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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황 「히로히도」 일화-(8)「레나드·모슬리」)<「LEONARD·MOSLEY」>|맥아더 원사와 일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천황은 구구하게 자기 변명하러「맥아더」원수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책임과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쓰려고 한 것이다. 천황은 대부분의 각료와 몇몇 측근자들이 전범으로 기소된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렇게 된다면 자기는 유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결정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회견모습을 「맥아더」원수는 그의 회상기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천황은 전쟁수행 중 일본국민이 정치 및 군사 면에서 저지른 모든 행동과 결정에 대해 유일한 책임자로서 나 자신을 원수가 대표하는 연합국의 판정에 맡기려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크게 감동되었다. 죽음이 따르는 책임, 내가 잘 알고 있는 여러 사실에 비추어도 분명히 천황이 걸머질 성질의 것이 아닌 책임을 스스로 감수하려는 천황태도에 나는 정말 벅찬 감동을 느꼈다.
이분은 선천적으로 천황 소질이 있지만 내 개인으로 볼 때는 지금 일본 최고의 신사와 대면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견이 있은 뒤 「맥아더」원수는「워싱턴]」에 대해 천황을 전범혐의자로 체포해서는 안 된다고 건의했으며 「트루만」행정부도 마지못해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자진해서 재판을 받으려했던 천황은 측근자들이 속속 체포·연행될 때 자신은 무사하다는 굴욕적인 입장에 서있었다.
그 중에는 천황이 별로 개의치 않은 자들도 있었지만, 단지 무지한 사람이나 악의에 찬 자들을 달래기 위해 점 찍힌 무고한 제물에 불과하다고 생각되는 전범혐의자들도 있었다. 특히 천황은 목호내부나 동경 외상이 체포·기소된 데 대해서는 가슴이 아팠다. 이 두 사람은 일본이 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늘 슬기롭고 민첩하게 행동했다고는 볼 수 없다하더라도, 천황 자신처럼 똑같이 전쟁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 이외에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천황은 동조대장의 체포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짢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천황은 근위공작의 죽음에 대해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천황은 어른이 된 후, 그 누구보다도, 즉 목호내부나 자기 동기들이나 서원사·목야·영목 같은 중신보다도, 근위를 신임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값싼 죽음을 택하다니. 1945년12월, 근위는 곧 전범으로서 심문을 받게된다는 통지를 받고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
천황이 놀란 것은 근위가 신념이 없었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맥아더」의 참모「휘트니」소장은 일본황실의 축소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황실관계직원 7천5백 명중 6천명이 해고되었다. 「맥아더」는 황족에도 식량배급제를 실시하고 정기적으로 통조림 등속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천황은 통조림에는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해고된 노직원들에게 보내곤 하였다. 따라서 궁성 안의 생활은 아주 검소한 것이었다.
동경교외에서 거처하는 황대자 명인이 미군장교들이 보내준 쇠고기 통조림과 「초콜릿」 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는 소문을 들은 천황은 즉시 황대자를 불러다 놓고 호되게 나무랐다. 동궁은 국민과 똑같은 생활을 배우고 고락을 같이해야 한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때부터 12세의 명인도 부황처럼 현미밥과 고구마 맛을 알게되었다. (계속) <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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