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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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래식 연극에 도전하는 새로운 연극 운동이 미국서 벌어지고 있다. 추상파 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신극은 이제까지의 연극이 철칙으로 삼고있던 형식 및 내용상의 모든 요소를 대담하게 무시하며 연극예술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재래의 연극은 일정한 체계 속에 여러 가지 요소가 밀접한 상관성을 가짐으로써 성립된다. 등장인물은 비록「실재적」인물은 아닐지라도 어디까지나 유기적인 의미를 가지고 다른 등장인물들과 관련되며 미리 작성된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 사건이 진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새로운 연극에서는 이런 점들을 찾아볼 수 없다. 첫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특징이라 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극의 생명이라고 「플로트」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추상파연극은 시청각적인 여러「테마」와 우발적인 사건에 의하여 연상적으로 생기는 모든 변화를 연결시킬 뿐이다.
새 연극은 또 모사를 전혀 쓰지 않고 음향과 「이미지」로써 그것을 대신케 한다.

<연상적 변화 연결시킬 뿐>
이제까지는 등장인물이 연극의 중추가 되어왔지만 신극에서는 인물은 여러 요소 중의 하나일 따름이며 따라서 흔히 비 인격체로서 다루어진다.

<등장인물은 인체효과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인체가 가지는 운동성 또는 시각적 효과를 위한 살결 또는 음향적 효과를 위한 목소리, 대충 이런 정도의 필요성 때문이다.
그러기에 등장인물의 몸에는 「페인트」가 칠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연기자가 땅바닥을 뒹굴어야한다. 이런 추상주의연극에서 배우는 이른바「연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기계가 이 연극이 목적하는 효과를 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다면 배는 반드시 사람이 되어 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등장인물은 화가의 그림물감이나「캔버스」꼴밖에는 안 된다.

<공간만으로 맘대로 연출>
이 추상파연극에는 이른바 「무대」 와 「배경」 또는「장치] 가 꼭 필요하진 않다. 다만 공간만이 있으면 된다. 재래식의 등장인물이나 이야기 줄거리가 없기 때문에 이 연극은 특정한 무대와 사실성을 띤 배경 따위에 구애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 어떤 장소에서든 맘대로 연출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추상파연극에 기획성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공연연습은 재래의 어떤 연극보다 더 철저하다.

<마구 옷 찢고 달려들기도>
최근 이 새로운 연극운동의 기수인「앨런·카프로」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상연되었다. 어느 숲 속 여기저기에 다섯 명의 남녀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있고 먼데서 여러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찾는다.
그러나 『여기-』하고 답하는 인물은 찾아내게 되면 와락 달려들어 거꾸로 매달린 사람 (여자 건 남자 건)의 옷을 마구 찢는다. 이것은 마지막 장면이지만 이야말로 추상파연극의 표본이 될만한 작품이다. 묵은 전통에 도전하는 이 새 연극운동이 이제 새로운 또 하나의 전통을 조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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