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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입 맞추게 한 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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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베네통의 새 수장이 된 알레산드로 베네통 회장.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베네통. 1955년부터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화려한 색상의 의류를 생산해 오고 있는 이 브랜드는 자극적인 기업광고를 통해 온갖 시련을 자초하기로 오히려 더 유명하다. 입맞춤하는 신부와 수녀, 나체의 거식증 환자, 엉덩이에 찍힌 에이즈 양성 낙인, 참전 용사의 피묻은 군복 등을 담아낸 광고들은 이미 고전이다.

2012년 칸 국제 광고제에서 ‘인쇄광고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언헤이트(Unhate: 증오하지 않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팔레스타인의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와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등 서로 불편한 관계의 국가나 종교의 지도자들이 입 맞추는 장면을 합성 사진으로 만든 이 광고들은 평화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뜨거운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로마의 카스텔 산 탄젤로 다리에 걸렸던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이집트 종교 지도자 이맘 아흐메드 엘 타예브의 입맞춤 광고는 바티칸 교황청의 불 같은 항의로 한 시간 만에 내려졌다.

하지만 효과는 강렬했다. 전 세계에서 관련 기사가 3000개가 넘었고, 600개의 TV프로그램에서 이 광고를 방송했다. 구글과 트위터에서는 수주 동안 5대 주요 토픽으로 다뤘고 페이스북에서는 60% 이상의 팬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2012년 새 수장이 된 알레산드로 베네통(49) 회장은 창업주인 루치아노 베네통의 둘째 아들이다. 자기 사업을 하다가 패밀리 비즈니스로 돌아오자마자 새 언헤이트 시리즈와 실업자 이슈를 다룬 광고로 ‘베네통 스타일’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그는 지난달 23일 파리 오스만 거리에 있는 베네통 매장 3층에서 전 세계 주요 패션 및 경제 전문기자들을 초청, 2013 S/S 캠페인을 공개했다. 이번에 베네통이 준비한 카드는 어떤 것인지 알레산드로 회장에게 중앙SUNDAY가 직접 물었다.

-베네통의 기업광고는 매우 자극적이다.
“우리는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을 광고를 통해 알리고 있다. 자극적인 기업광고 또한 브랜드 DNA의 한 부분으로, 사회적·철학적 이슈에 대한 시각과 비전을 대중과 나누고자 한다. 논쟁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는 토론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한 방법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광고를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베네통은 광고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내는 큰 문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잠재의식 속에 내재한 정의감을 자극해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 내려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의도하는 바다. 베네통 광고의 진정한 목적은 대중의 관심을 지구촌의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돌려 최종적으로 인류의 화합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언헤이트’ 시리즈도 논란이 됐는데.

“언헤이트 시리즈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증오와 맞설 수 있을까? 어떻게 실업자들에게 귀 기울일 수 있을까? 아무도 싫은 사람과는 입맞출 수 없을 것이다. 언헤이트 광고는 전 세계에서 5억 명이 봤다. 우리는 언헤이트 재단을 통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동시에 기업광고 메시지와 연결시킨다.”

베네통이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 속으로 스며들어 함께 하고자 하는 노력의 중심에는 1994년 베네통 그룹의 커뮤니케이션 연구 센터로 설립된 ‘파브리카(Fabrica)'가 있다. 혁신과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파브리카는 영화·그래픽·디자인·음악·출판물·사진·인터넷 등을 동원해 문화와 산업을 접목하고 있다. 파브리카는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창의적인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파브리카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스 요티(Macs Iotti)는 지난해 11월 파리의 핀업 스튜디오에서 3일 동안 베네통의 2013 S/S 캠페인을 촬영했다.

-이번 광고는 어떤 특징이 있나.
“단순히 잘생기고 유명한 모델 9명이 등장한다는 점을 넘어 이들이 갖고 있는 개인적 이야기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들을 통해 우리가 누군지 생각해 보자는 기획이다.”

-다른 패션 브랜드도 유명 모델을 광고에 쓴다.
“우리 회사의 인지도가 높고 자본이 많으니 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채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숙제는 이 모델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게 할 것인가였다.”

-모델은 어떻게 선택했나.
“이들 각자는 매우 의미 있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미와 가치를 동시에 가진 더블 페이스라고나 할까. 어떤 모델은 개인적 이슈에 더 연결되기도 하고 어떤 모델은 사회적 이슈에 더 적합하다. 그래서 이번 캠페인은 베네통 광고 역사상 처음으로 기업 광고와 제품 광고의 믹스라 봐도 좋을 것이다.”

9명의 모델들은 카메라 앞에서 그들만의 재능과 특성을 색에 반영했고 색에 대한 개인적 해석과 문화적 다양성을 이야기했다. 이 9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은 국제적 정신과 사회적 메시지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으며, 이는 베네통 그룹의 기본 가치와 일치한다는 것이 알레산드로 회장의 설명이다.

이들의 이력은 다채롭다. 고향 수단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앙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알렉 웩(Alek Wek), 의족이지만 멋진 워킹을 하며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다거나 모피 불매 캠페인을 하는 독일 모델 마리오 갈라(Mario Galla), 브라질 축구스타 토니뇨 체레조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2011년 여자로 성 전환 수술을 하고 세상의 편견을 극복한 트랜스젠더 모델 리아 티(Lea T),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딸이며 ‘원 프리킨 데이(One Frickin Day)’라는 자선단체를 설립해 지구 환경보호운동을 위해 적극 활동하는 엘레트라 비더만(Elettra Wiedemann), 찰리 채플린의 손녀이자 모델인 키에라 채플린(Kiera Chaplin), 세계적 모델로 성공해 아랍 여성들의 희망이 된 튀니지의 하나 반 압데슬렘(Hanaa Ben Abdesslem), 핑크색 머리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모델 샬럿 프리(Charlotte Free), 9살 때부터 복싱을 시작해 월터급 챔피언까지 따낸 영국의 배우 겸 모델 더들리 오쇼그네시(Dudley O’Shaughnessy), 우루과이 군부세력을 피해 9세부터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다가 밀라노 레스토랑 ‘Al Pont De Ferr’의 주방장이 되어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으로 발전시킨 요리사 마티아스 페르도모(Matias Perdomo)가 그들이다.

-처음 광고 시안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바로 이거다! 라는 확신이었다. 우리의 기업 철학을 담아 제품광고를 기획했다는 것이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이 광고를 보는 일반 소비자들이 당신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바로 전달받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베네통의 철학을 이해시키기 위해 모든 정보를 줄 것이다. 광고는 대화다. 미디어들과 우리 웹사이트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해 소비자들을 우리 브랜드에 적극 참여하도록 할 것이다. 이 9명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캠페인 이미지가 담긴 한정판 티셔츠는 1월부터 전 세계 베네통 매장과 온라인숍에서 판매되고 있고 티셔츠 판매액은 전부 언헤이트 재단에 기부된다.”

-회장으로서 당신의 철학은.
“일을 즐기고 내가 정한 한계를 계속 바꾸며 스스로를 변화시키지만 동시에 지난 과거와 경험을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과거와 경험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알레산드로 베네통
미국 보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MBA를 취득한 후 런던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1992년 사모펀드 회사인 ‘21 인베스티멘티’ 그룹을 설립하고 사모펀드를 운용하며 13억 유로 규모의 자산 관리를 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대통령이 뛰어난 산업인에게 수여하는 명예기사(Cavaliere del Lavoro)직에 최연소로 노미네이트됐다. 88년부터 98년까지 베네통이 자동차 경주 포뮬러 원에 출전할 때 경주팀의 회장직을 지내며 베네통 포뮬러 원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20여 년 만에 패밀리 비즈니스를 이끌게 된 것에 대해 “회사를 모던하게 변화시켜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회사로 재정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파리 글 김성희 중앙SUNDAY 매거진 유럽통신원 사진 베네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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