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자산가, 세금 안 내려 위장 이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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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수백억원대의 자산가인 홍모(77)씨는 2005년 3월 부인 류모(74)씨와 이혼했다. 홍씨는 위자료 명목으로 류씨에게 시가 200억원대에 이르는 서울 강남구 소재 빌라 17채와 강원도의 땅 150만㎡를 넘겼다. 홍씨 본인의 명의로는 시가 100억원대의 경기도 용인시 대지와 제주도 서귀포시의 임야만 남겼다.

 홍씨는 이혼 직후 부동산을 팔기 시작했다. 5개월 만에 모두 현금으로 바꾼 홍씨는 이후 6년 동안 도피 행각을 벌였다. 부동산 매각으로 부과된 국세 21억원과 지방세 2억1000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홍씨는 국세청과 서울시의 세금 독촉을 피하기 위해 주소를 일곱 번이나 바꿨다. 실제로는 주민등록상의 주소가 아니라 강남에 있는 부인 명의의 빌라에 거주했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부인 명의의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도피 기간 가산금이 불어나 체납된 세금은 총 41억원으로 불어났다.

 서울시와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8년 3월 세금 체납으로 인한 독촉을 받자 ‘세금을 성실히 내겠다’는 내용의 납부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홍씨는 며칠 뒤 “위자료로 준 재산을 압류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년간의 소송 끝에 1, 2심 법원은 “위장 이혼이 인정됐다”고 판결했고, 서울시는 홍씨 부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1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홍씨 부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지방세 체납을 이유로 체납자에게 영장이 청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성운·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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