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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중국 경제 대장정] 푸젠성 샤먼특구의 '독일병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푸젠성에서 가장 번듯한 마을로 꼽히는 곳이 팅장(亭江)이다. 푸저우(福州)에서 동쪽으로 2시간 가량 달리면 나오는 이 동네는 1천여가구의 주민들이 통째로 외국으로 나간 밀항자의 마을이다.

사람이 없어 황량할 것이란 짐작과 달리 팅장은 고급 빌라단지를 연상케 하는 호화로운 별장촌의 모습이었다. 동네 언덕엔 구경을 온 푸젠성의 인근 마을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삼삼오오 "저 집은 외국의 유명한 실내장식가가 와서 인테리어를 했다더라""이 집은 좋다는 자재만 써서 짓는데만 3년이 걸렸다더라"며 수군댔다.

화려한 집들은 그러나 대부분 텅 비어있다. 주민들이 외국에서 돈을 벌어 고향에다 큰 집을 짓고는 다시 나갔기 때문이다.

팅장의 한 공무원은 "밀항에 성공해 외국에 정착한 주민은 고향에 돌아와 친척들에게 다시 밀항 자금과 사업 자금을 대준다"며 "밀항은 이 마을 사람들에겐 일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밀항을 결심하면 주변에선 부조하듯 돈을 모아주는게 관습처럼 됐다. 밀항 당일 밀항자는 '호호탕탕(浩浩蕩蕩)'하게 길을 나서고 친척들이 성대한 환송식을 베풀어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푸젠성 관계자는 "밀항자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집집마다 밀항자가 없는 집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푸젠성 출신 화교는 40여개국에 2백50만명 정도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밀항자 출신이란 것이다.

밀항이 성행하다보니 밀항을 중개하는 조직도 많다. 최대 조직으로 알려진 서터우(蛇頭)는 물론 푸젠성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팅장의 한 주민은 "미국은 5만달러, 일본 2만5천달러, 한국은 1만달러 정도가 공정 가격"이라고 귀뜸해준다.

오랜 밀항의 역사는 푸젠성 주민들의 밀항을 부추기는 또다른 동력이다. 이미 19세기에 푸젠성 출신들은 미국의 철도건설 노동자로 건너 갔고, 일부는 알라스카의 금광에까지 진출했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선조들은 뒤이어 밀항한 후대들의 일자리를 챙겨주는 등 든든한 후견자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으로의 밀항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자 일본의 항구도시 요코하마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경찰을 항만 등에 배치하는 것은 물론 푸젠성 방언까지 익히도록 했다. 급증하는 푸젠성 밀항자들을 집중 단속하기 위해서다.

반골의 고장으로 찍혀 청왕조내내 가난을 대물림해야 했던 푸젠성 주민들에게 밀항은 어쩌면 '부자가 되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자신있는' 일인 셈이다. 실제 밀항은 푸젠성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푸저우대 경제학과 자오바이후이(趙栢輝)교수는 "푸저우시내 큰 호텔과 빌딩 상당수는 밀항자 출신 화교나 밀항을 알선해주고 돈을 번 사람이 만든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밀항으로 외국서 벌어들인 돈뿐 아니라 해외에 정착한 푸젠사람들이 만든 상업적 네트워크가 밀항의 가장 큰 재산"이라며 "푸저우가 다른 중국도시와는 달리 공업보다는 상업에서 살 길을 찾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였는지 취재팀은 중국 각 도시들이 으레 자랑하는 '세계 5백대 기업 몇 개 유치'라는 말을 푸저우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푸저우의 최대 산업이던 신발.가방 공장들은 내륙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1998년 5천4백만달러였던 신발.가방 수출액도 99년엔 4천6백만달러로 줄었다.

공장은 별볼일 없지만 푸저우의 상점은 크고 많기로 유명하다. 싱가포르와 대만 상인들이 중국에서 신발을 사려면 찾는 곳이 푸저우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중국에서 가장 큰 신발도매상가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푸저우시 관계자는 "다른 도시와 달리 외자기업의 무역활동도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며 "이는 외자기업 유치는 물론 해외에 정착한 이곳 출신 화교들의 고향 진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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