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위탕(林誤堂)이 구수하게 쓴 베이징의 삶과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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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린위탕(林語堂)은 설명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중국의 유명 학자이자 저술가다.

그가 생존하고 활약했던 시기가 꽤 오래 전이라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 을 묘사한 그의 이 책이 과연 얼마만한 정보 가치가 있을까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문화적 시각, 이를 담아내는 유려한 필치는 여전히 독자의 눈길을 잡아 끌고 있다.

베이징은 사계절을 지니고 있지만 청명한 날씨와 서북쪽에서 날아오는 흙먼지가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곳.

저자의 펜끝으로부터는 베이징 날씨의 이러한 특징과 그 밑에서 숨쉬며 살아간 베이징 사람들, 그들의 근저를 이루는 베이징의 역사, 이제 유물로 남아 있지만 날씨와 함께 기묘한 변주를 자아내는 건축물들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요즘 베이징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그 곳의 날씨에서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한다. 스모그처럼 엉켜 있는 뿌연 대기, 매캐한 기름 냄새, 우중충한 건물들 때문에 감흥은커녕 손사래를 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몇가지 인상에 입각해 베이징을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곳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이해하면 그곳은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저자는 풍부한 문화적 소양과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들을 베이징 속으로 끌고들어간다.

황금빛 기와가 찬란함을 자랑하는 자금성(紫禁城) 에 관한 세밀한 묘사로부터 청대 광서제가 죄수처럼 죽어간 중난하이(中南海) 등 역사적인 장소에 대한 술회, 중국의 건축물과 서양 건축물에 관한 탐미적인 분석 등이 하나같이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낙천적이면서도 순박한 베이징 사람들의 삶도 그려진다. 그들의 성격과 보수적인 의식, 일상과 여가, 종교적 삶이 그려지는데 전체적으로는 이들의 특징이 '관용과 조화'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베이징 자체가 원대(元代) 몽골족,청대(淸代) 만주족, 더 일찍이는 거란족 등이 지배한 곳이지만 베이징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그의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하는 게 이 책의 중요한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근대 민족국가 성립 이후의 관점에서 예전의 왕조시대를 바라보는 자민족 중심주의적 성향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문장의 내용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도면 배치, 문장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이 오히려 빠져 있는 점 등은 책 편집 상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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