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기고문] 문학 멸시 누가 부추기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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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알아보려는 성의없이 편향된 시각에서 제시된 듯한 발언은 정당한 비판이 아닐 수도 있다. 문학출판계의 현황을 분석한 칼럼 '조우석이 본 책과 세상'이 그렇다고 나는 판단한다.

문제의 칼럼은 송인소식 63호에 게재된 한기호씨의 글을 인용, 최근 출판사들이 "문학서를 섹스의 미학으로 포장해 팔고 있다"며 이는 문학 포르노 쇼를 방불케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발언에 대해, 칼럼에서 인용한 광고 카피의 작성자인 필자는 사실 확인과 더불어 15년간 문학출판 편집자로 일하며 키워온 나 자신의 긍지를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확인할 필요를 느낀다.

먼저 '십몇㎝만 들어가면…'이라는 카피는 제6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당선작 『동정없는 세상』 광고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함께 제시되어 있는 그 다음 광고 문장 '이 문을 넘어서면 과연 낙원이 있을까'와 함께 읽으면 그 투명한 마음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질지언정 역겨움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작품은 박완서.도정일.황종연 세 심사위원의 지적처럼 십대 소년의 섹스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밝고 가볍고 건강하게 다룬 소설이며, 문제의 구절은 바로 그 안쓰러운 욕망과 환상을 요약한 것에 다름아니다.

그것이 문학 포르노 쇼라면 그 작품을 권장 도서로 뽑은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의 모임'과 KBS 'TV 책을 말하다'의 결정은 어떻게 되는가. 그 교사들과 전문가들을 '포르노 마케팅'에 홀린 눈먼 독자라고 하겠는지 진정 묻고 싶은 마음이다.

『마녀물고기』 광고에서 인용한 세 구절도 그렇다. 그것들은 문화일보와 한국일보 기사에서 따온 것이다. 서평 기사를 인용하고 그것을 환기시키는 것은 출판물 홍보의 관행이며 광고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반적 방법이다.

그렇게, 작품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요약.제시하고 있을 뿐인 이 카피가 역겹다면 그 기사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 소설집이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복합된 욕망의 세계를 새롭게 그려냈다는 평가는 다른 여러 신문에서도 비슷하게 내놓은 바 있다.

『마녀물고기』가 어떤 작품인지 알았다면 그 광고를 포르노 선전과 동일시하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동네는 그간 여러 소중한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해 왔으며, 어렵사리 광고지면을 꾸릴 때면 개별 작품들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해줄 방법을 찾아 고심해 왔을 뿐이다.

칼럼은 문학출판 현황을 개탄하면서 모 작가는 활동무대를 잃었다고 말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장편(문학동네 출간) 과 창작집을 연이어 펴내고 그중 장편은 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중견 작가를 두고 이 무슨 말인가.

문학 현황에 관한 칼럼의 발언은 작가와 작품들을 따라 읽어왔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문제의 송인소식 글처럼 편벽된 시각에 잡혀 있는 방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의 회생을 말하려면 문학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칼럼에서 본 것은 유감스럽게도 애정없는 구호였다.

'문학 시장의 죽음'은, 만일 있다면, 문학 및 문학출판에 대한 폄하를 부추기는 선정주의 속에 있을 따름이다.

문학동네 편집국장 정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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