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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안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번 각료회의를 취재하고 간 일인기자가 쓴 한국기행문이 일본신문에 실렸다. 일제안경에 비친 한국상에서는 공업화의 의욕이 크게 부각되어있지만 그 이외의 국면에 대한 관찰이 더 흥미롭다. 「택시」를 타거나, 가게에 가거나 일본인이라는 것을 눈치채기만 하면 모두 일본말로 응대해온다. 경주박물관을 구경시켜준 한 안내인은 유창한 일어로 한·일 문화의 동조론을 풀어주었다. 서울서는 영어학원보다는 일어강습소가 번창하고 있다. 이것은 작년까지만 해도 반일 「데모」에 여념이 없던 대학생들이 한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본의 협력의 효능을 「솔직하게」 인정하게 됐다는 증거라고 했다.
일제안경은 책방의 서가를 답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점에는 「빙점」과 같은 일본 「베스트·셀러」의 해적판이 즐비하게 꽂혀 있다. 『이것은 「메이드·인·재팬」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는 한국의 젊은 세대의 기분을 반영하는 듯 했다.』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한국인들의 마음이 작년 12월 18일의 비준서 교환으로 풀려졌다. 『뒤집어 보면, 이 시기를 한국사람들이 고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민심의 변화와 보조를 맞추어서 정부에서는 오는 9월부터 대일감정을 개선하기 위해서 교과서를 고치게 되었다고 하고, 신문들도 일본을 헐뜯는 대신에 일본을 소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1년전, 반년전까지만 해도 한길에서 일본어를 지껄이다간 무서운 눈총을 받았고, 일본상사의 간판이 「데모」 학생들의 손으로 박살이 나곤 했다. 그런데 불과 반년동안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옳은가.
각 지방의 안내인들과 선물가게 여점원들이 일제안경에게 말해준 답은 『시세의 흐름이지요』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일제안경의 독자적 한국관에서 나온 주석을 붙이고 있다. 왈 『오랜 역사를 등에 지고 시세의 흐름에 순응하는 민족성의 소치일 수도 있다.』 아, 일제안경-이것도 「메이드·인·재팬」이라해서 매력이 있고, 거기에 비친 한국상이 옳고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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