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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지겟군의 변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번에 누구는 취직이 되어 서울로 간다더라. 너도 쓸데없는 생각 좀 말고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그래, 이렇게 지게나 지려고 서울까지 가서 공부를 했단 말이냐. 남 보기에도 창피해서 못 살겠다.』
고등학교까지 나와 가지고 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항상 염려(?)를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시다.
농사를 짓는게 왜 노는 것이며, 왜 몹쓸 놈이 되고, 가망 없는 놈이 되는가? 아무 것도 몰라서 지게를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게를 진다고 사회의 낙오자도 아니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 아닌가? 그러나 늙으신 아버지는 불만이시고 부끄럼으로 여기신다.
『아버지! 이 몹쓸 놈을 용서하십시오. 누가 뭐라든 저는 제가 목적하는 바를 향해서 끝까지 이 길로 갈 것입니다. 절대 저는 몹쓸 놈도 아니고 더더구나 낙오자도 아닙니다. 모두들 출세를 해서 고향을 떠나고 있지만, 저는 이렇게 부모님 모시고 살겠습니다. 고향을 지키고 힘껏 살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만 아버님께 대꾸를 하고 그 이상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아버지도 내가 지향하는 바를 이해 하실 날이 오리라고 믿어보면서.〈오재수·22세·농업.경남함양군안의면대대리 두평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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