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15.내륙 물류 중심지 꿈꾸는 충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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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웨이(王家衛)감독의 대표작 '중경삼림(重慶森林)'에서 영화의 무대 충칭(重慶)은 숨가쁜 개발에 내몰리는 중국의 옛 도시를 대변한다.

미로같은 도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곳곳의 골목길, 칙칙한 회색 건물들. 그 사이로 쉴새없이 들려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 짝사랑에 빠진 패스트푸드점 종업원 왕징원(王靖雯)이 즐겨 듣는 이 노래가락은 도시의 모든 풍경을 마법처럼 바꿔놓는 개발 붐의 상징이다.

'충칭 드림'의 현장, 충칭의 별명은 산성(山城)이다. 험한 산위에 지어진 도시라 항일전쟁 당시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는 이런 지형을 이용하기 위해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오기도 했다. 잠시 중국의 첫째 도시로 격상했던 충칭은 그러나 그때문에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자 찬밥신세가 됐다.

도시에 다시 활기가 찾아온 것은 1997년 세계 최대의 싼샤(三峽)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부터. 중국 정부는 쓰촨(四川)성에 편입했던 충칭을 직할시로 승격시키고 상하이에서 충칭을 잇는 양쯔강 대수로를 건설, 충칭을 대륙의 물류 중심지로 만드는 공사를 진행중이다.

충칭시 경제위원회 마파샹(馬發□)부주임은 "싼샤댐이 완공되면 상하이~충칭을 한번에 연결하는 창장(長江) 뱃길이 열린다"며 "이 뱃길은 상하이~충칭 간 철도 8개와 맞먹는 화물 운송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충칭은 서쪽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짐을 부린 뒤 동쪽으로 가고, 상하이 등 동부의 첨단제품들이 서쪽으로 오는 중국 물산의 집합지가 된다는 것이다.

옛부터 창장 뱃길은 '남선북마(南船北馬)'라 하여 화중(華中).화남(華南)지방의 가장 큰 도로역할을 했다. 이 뱃길의 서부 종착역인 충칭은 싼샤댐 건설의 최대 수혜자인 셈이다.

현재 창장 뱃길 중 우한~충칭 간 6백30여㎞ 구간은 수심이 얕아 1천t급 배가 겨우 운항하는 정도다. 그러나 싼샤댐이 완공되면 이 구간의 수심이 1백50m이상 높아져 상하이에서 출발한 1만t급 화물선이 충칭까지 곧바로 올라올 수 있게 된다. 남선북마의 '남선'이 비로소 이름값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벌써부터 충칭시는 창장(長江)과 자링장(嘉陵江)이 만나는 조천문(朝天門) 아래쪽 여객항구의 확장에 나섰다. 그 옆에는 자동차.컨테이너 운반부두를 새로 지을 예정이다. 2005년까지 항만 확충에만 33억위안(5천2백8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항만만이 아니다. 육지에선 '30.8계획'이 한창이다. 이 계획은 2005년까지 충칭시 한복판에서 도심을 감싸고 있는 외곽 순환도로까지는 어느 방향으로든 30분 안에, 변두리 농촌지역까진 어디라도 8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교통망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배로 화물을 싣고 온다 한들 이를 서부의 다른 도시로 운반할 교통망이 없으면 물류 중심지를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려면 성(省)도 아니고 같은 시내에 있는 동네를 가는데 8시간이나 걸리도록 만드는 것이 시정부의 목표일 수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충칭에서는 도심에서 변두리까지 가는데 빨라야 15~16시간씩 걸린다. 충칭의 면적이 남한전체의 82%(8만2천㎢)나 될 정도로 넓기도 하지만 산 위에 도시를 만들다 보니 도로사정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이다.

시급한 공사인 만큼 웬만한 불평.불만은 무시된다. 취재팀이 도착한 9월 중순 섭씨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날씨도 아랑곳않고 시내 곳곳에는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었고, 도로는 교통통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도심뿐 아니다. 시내 외곽은 고속도로 공사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충칭~청두(成都) 간 고속도로를 개통한 데 이어 북쪽으론 만주까지, 남쪽은 구이저우(貴州)성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건설중이다. 충칭시는 5년안에 경부고속도로 6.4배 길이의 도로와 철도를 각각 건설하고 도심에 6개의 다리를 새로 놓을 계획이다.

이런 개발붐을 타고 충칭의 가능성을 노린 국내외 기업들의 진출도 시작됐다. 그 가운데는 최근 중국의 '한류(韓流) 열풍'을 업고 중국 백화점 업계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도 있다. 충칭의 번화가 해방비(海放碑)거리의 신스제(新世界)백화점을 통째로 빌려 한국 상품만 파는 '한류 백화점'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한중무역공사다. 이 회사가 쇼핑의 천국이라는 상하이나 청두(成都)를 제쳐두고 이곳으로 온 이유도 충칭의 가능성을 높이 사서다.

한중무역공사 충칭사무소 황허(黃河)대리는 "상하이나 청두는 이미 소비수준이 너무 높아 한국 상품이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지만 충칭은 이제 막 개발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곳이기 때문에 시장을 개척하기가 수월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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