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기자폭행 하며 '수사권' 요구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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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진기자의 일터는 현장이다. 그곳이 아름답든 추하든, 아니 목숨을 위협하는 전쟁터일지라도 카메라와 함께 현장을 지킨다.

지난 16일 경찰 방패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본지 박종근 기자도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의 시위 현장에 있었다. 거칠었던 1980년대에 비하면 그래도 나아졌지만 시위현장에서의 기자는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시위대의 돌이나 화염병에, 경찰의 과격한 진압에 다치기 일쑤다.

더 심각한 건 가해자가 경찰일 때다.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질서를 잡겠다는 시위 진압이 툭하면 폭력화했고, 그때마다 시민을 오히려 피해자로 만들었다.

이날 朴기자는 외신을 포함한 20여명의 사진기자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취재 중이었다.

그러나 진압 경찰은 누가 봐도 기자임이 분명한 그가 마치 전장(戰場)의 적군이기라도 한 듯 방패로 얼굴을 내리찍었다. 법과 규칙에 따라 엄정하고 정의롭게 행사해야 할 공권력이 마구잡이 폭력을 행사한 또하나의 사건이었다.

종종 우리 경찰은 그랬다. 그래서 '무법 경찰'이란 말도 심심찮게 들었고, 국민들의 눈총도 받았다.

요즘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고 준 힘과 권력을 아무렇게나 쓰지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아직은 큰 것이다.

'법적 통제까지 안 받으면 경찰이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부상해 파쇼화할 우려가 있다'(법무연수원 발간 책자)는 지적도 그래서 한편으론 수긍이 간다. 오죽하면 그런 얘기가 나올까.

경찰은 독자적인 권한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이 그것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을까부터 생각해야 한다. 혹 국민의 믿음을 받는 대상이 못 된다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뜯어고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수사권 독립'이라는 경찰의 꿈은 결국 국민이 'OK'해야 한다. '폭행 경찰'에게 수사권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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