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땅이 현대백화점 주차장 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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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 강남구 소유지만 현대백화점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지상은 공원 부지지만 강남구는 “공원 건립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오종택 기자]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야외주차장. 평일 낮인데도 주차장은 빈 곳을 찾기 어려웠다. 이곳 지상 주차장은 현대백화점이 고객을 끌어들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김정희(32·여)씨는 “갤러리아 백화점에 가려다가도 길게 늘어서 있는 주차 차량을 보곤 현대백화점으로 방향을 바꾼 적이 많다”며 “주차장 이용이 편리해서 현대백화점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뒤 신현대아파트에 사는 박모(43·여)씨는 “주민이 같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집과 가까워 편리한데 현대백화점 소유라 아쉽다”고 말했다. 1970년대 세워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민들은 만성적 주차공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인근 주민이나 이용객 대부분은 면적 1만3966㎡(4200여 평)에 달하는 이 주차장을 현대백화점 땅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강남구 소유다. 주인도 아닌 현대백화점이 개점 당시인 1985년부터 줄곧 이 공간을 사실상 백화점 전용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85, 86년은 사용료를 내지 않았고, 이후에도 당시 은행 이자보다 낮은 연 2억~3억원의 사용료만 내왔다. 2001년에 와서야 서울시와 연간 10억원에 임대 계약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이 땅을 편법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유였던 이 땅을 강남구가 2010년 사들이면서 2011년부터는 임대료를 연간 26억원으로 인상했다. 계약기간은 3년이다. 인상폭은 크지만 시세에 비하면 싸다. 강남구는 압구정동 일대 재개발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2010년 700억원에 이 땅을 사들였다.

 강남구 측은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에 의뢰했더니 구가 직접 공영주차장으로 운영하면 연 21억원을 버는 걸로 나왔다”며 “5억원을 더 받으니 이익”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압구정동 한복판 ‘금싸라기’ 땅을 주차장으로만 사용하겠다고 못 박은 후 가격을 매기는 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원래 용도도 공원 부지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학교 부지로 묶여 있다가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공원·주차용으로 바뀌었다. 지상에는 공원을 짓고 지하는 주차장으로 활용한다는 게 당시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강남구 모두 공원을 짓지 않고 계속 현대백화점이 주차장으로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우리는 시·구 방침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신연순 강남구 공보팀장은 “현대백화점과 계약이 만료되는 2014년부터는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이 직접 이 주차장을 관리,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강남구 관계자는 “같은 업체와 연속해서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구 조례 때문에 구가 직접 운영하는 것일 뿐 2014년 이후에도 현대백화점 주차장으로 계속 쓰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대백화점이 돈을 많이 벌어야 구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인근 주민들은 이 부지가 원래 용도인 공원으로 활용되는 걸 더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모(68·신현대아파트)씨는 “주차장은 시끄럽기만 하고 주민에게 도움 되는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남구청은 압구정동 재개발 계획을 이유로 당분간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유성운·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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