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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이 뭐길래] 저예산 영화에도 햇살을…

중앙일보

입력

10년전 쯤이다. 당시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던 선배가 술을 마시다 말고 밖으로 나가더니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았다.

걱정이 돼 찾아 나섰더니 선배는 문 앞에 서서 달을 쳐다보며 울고 있었다. 왜 우냐고 물었더니 '세상이 X같아서…' 딱 한마디 하더니 집에 올 때까지 계속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었다. 그러나 그 선배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영화 한답시고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독립 프러덕션을 차려 대안영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여러 편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지만 저예산으로 만드는 영화에 돈들 대려는 투자자를 잡기는 산넘어 산이었다.

정말이지 그 선배는 라면 먹어가며 작은 영화운동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되는 일은 없고 앞날은 까마득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가 영화계를 떠난 적은 없었지만 영화계에 없었다. 감독들 모두가 그렇지만 그 또한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며 데뷔를 준비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야 어머니의 영전에 바친다는 영화 '동승'을 4년만에 완성하게 되었다.

'동승'을 제작하기 위해 그가 겪은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했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촬영을 나갔고, 연기자들과 제작진 모두는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긴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그 집념의 사나이 주경중 감독이 최근 필자를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은 '동승'으로 큰 돈을 벌거나 심지어 제작비 조차 건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소원이라면 자기 영화가 관객들과 오랫동안 만났으면 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나는 대뜸 그렇게 고생해서 만들었으면 당연히 돈도 벌고 흥행도 돼야한다며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준비하면 큰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저예산 영화는 흥행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영화의 징크스가 돼 버렸다. 저예산 영화라는 판정이 제작도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 영화의 운명을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최근 흥행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였지만 수작이라 평가받은 일련의 영화들은 저예산 영화.작가영화라기 보다는 흥행의 틈새를 노린 또다른 기획영화로 분류해야 타당하지 않나 싶다.

그 이유는 어떤 영화들은 준스타급 배우를 기용했고, 평균적으로 흥행영화에 못지않은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투입했으며, 주류 배급망을 통해 상영됐기 때문이다.

투자자도 손해를 생각하고 돈을 대지는 않았을 테고 대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흥행은 노렸을 게 아닌가.

저예산으로 만든 진짜 감독영화는 과연 몇편이나 되는??저예산 영화는 마케팅비를 포함해서 총제작비 3억원 한도에서 끝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것은 단관개봉을 하더라도 제작비를 회수해 다음 영화를 기약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충분 조건이다. 정책적인 뒷받침으로 안정적인 상영관을 확보한다면 금상첨화다.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만만치 않은 사람들. 모든 게 불투명하지만 그들은 단지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영화를 만들어 간다. 주 감독이나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후 10년만에 휴먼드라마 '선택'을 촬영 중인 홍기선 감독. 이들에게도 투자의 서광이 비치길 간절히 바란다.

주필호 주피터 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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