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화제〉한국 최초 국제심판 김덕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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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축구 국제심판관 자격을 얻었으며 2O여년 간 심판 생활을 개속했던 김덕준(48· 서울동대문구창신동459∼45) 씨가 입에서「휘슬」 올 뗀다.
6일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동남아 3개국 축구대회 마지막날 중국-일본전 주심을 맡았던 김덕준씨는 이날 「게임」을 마지막으로 심판복을 벗고 『후진양성에 전력하겠다』고 말함으로써 한국축구의 국제심판은 5명에서 4명으로 줄게되었다.
항간의 ,축구인들에게 어느 때는 『축구에 미친 사람』이라고까지 말 들어가면서 축구에 개인생활올 기울여 이바지해 온 김씨는 52년 사재를 털어 가며 축구의 본고장 영국에서 6개
월간 축구이론을 연구했고 동경 「올림픽」이 끝난 64년부터 65년3월까지 약5개월 간 서독 「헤네프」축구학교에서 축구학을 연구, 한국사람으로는 또한 처음으로 「코치」면허증을 받은 한국제일의 축구이론가이며 실기「베데랑」.
32세 때인 51년8월 FIFA (국제축구연맹) 에서 한국인최초로 국제심판자격을 얻은 김씨는 동경 「올림픽」, 아세아경기대회, 그밖에 크고 작은 국제경기 14개의 「게임」을 주심하여 멀리 서독· 영국을 비롯하여 가까이는 일본· 중국· 마래· 비율뢰·「버머」등지에서 한국의 김덕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동경 「올림픽」 때 수만 관중이 환호하는 가운데 열린 「헝가리}-「모로코」전이나 63년도「메르데카」축구대회 자유중국-마내 전의 주심을 맡았을 때는 정말 축구인으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15세부터 「볼」을 차기 시작하여 12년 간의 현역선수생활, 20년간의 심판생활, 지금까지 32년동안 오로지 축구에만 전심해 온 김씨는 20년 동안 입어온 심판복과 「스파이크」F를 후배 국제심판 홍덕영씨와 최광석씨에게 물려주면서 『양심 있는 측구인으로 머물러 훌륭한 후배양성에만 전력하겠다』는 그의 은퇴소감은 아집과 파문의식에 사로 잡혀 몰지각한 감정대립만울 일삼아온 이 땅 체육인들에게 하나의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심만을 사퇴하는 것이 축구에서 뗘나는 것은 아닙니다』 2선에 물러서서 자기 힘 닿는데까지 축구계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김씨는 앞으로는 「축구평론가」로 이론축구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며 평생 소원인 「축구학교」를 설립하겠다고. 김씨는 축협이 제정한 66년도 연구상을 받았고 현직은 석공축구팀 감독.
은퇴하는 날 최치환 축구협회장은 그에게 은제「휘슬」을 기념품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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