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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중지난의 월남 막후 협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베트콩」전투를 눈앞에 둔 채 「자중지난」 에 빠졌던 「사이공」 은 지금 폭풍전야같은 고요 속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기자가 이곳에 도착하던 6월1일까지만 해도 불교도과격파의 청년부장 「티엔· 민」 승에 대한 암살미수사건이 나고 작은 규모나마 「데모」가 「사이공」 시내 여러 곳에서 일어나 어수선하던 거리가 어느 사이 평온을 되찾고 반난파측의 거점인 「후d;」 시가 「키」 정부에 굴복했다는 보도가 전해져도 아무런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시한폭탄」같은 이 고요함은 지난5월27일 「주라이」에서 열린 「키· 티 회담」 과 지난 6월1일의 월남국가지도위원회의 정원을 6월6일까지 20명으로 늘려 민간인 10명을 새로 참여시키기로 하는 대신 그때까지 「데모」 는 쉬기로 한다는 「키」 정부측과 불교지도자간의 합의내용이외에는 상세한 대목은 일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 할 민간인10명의 각 정파별· 종파별 비율문제 및 국가지도 위개편 후의 「티우」 의장 과 「키」 수상의 진퇴문제는 그 뒤의 협상거리로 넘겨졌다는 얘기이나 그 첫 단계인 각 파 비율문제에 관한 이견은 심각하여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속에서 불승 측은 일단 이 군민 지도위 구성을 거부하는 선까지 갑자기 후퇴해 버렸다.
원인은 일부 온건파 불승들 사이에 「키」 「티우」사임설이 나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전혀 그럴 뜻을 비치지 않았던데 기인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6일 하오에 열린 45명의 월남 육·해·공군최고위장교들의 군지휘관회의에서는 「키」 · 「티우」의 계속집권을 확인하는 한편 l0인 군사 지도위가 제출한 10명의 민간인명단을 원안대로 통과시킴으로써 강경파 불승 들의 입장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막을 내렸다.
그래도 동 회의는 불도에 얼마큼 영향력이 있는「트란· 반·도」외상과 「팜·후·추옹」박사를 불교도 대표로 선출하므로써 성의를 보이려고 애쓴 것 같으나 대다수의 불도들이 이에 전적으로 동의할런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다.
어쨋든 내전사태가 한숨 돌리어 평온해지기까지에는「헨리·캐보트·로지」미국대사의 「사이공」 귀임을 전후하여 두드러지게 벌어진 미국 측의 전례 없는 세 번 (?) 에 걸친 「사이공」 정부지원과 그에 힘입은 「사이공」 정부의 강경책이 주효한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군수보급의 태반을 미국에 의존하고있는 「티」장군영향력하의 제1군단이 한 달 이상 저항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또 「게릴라」 지역에 둘러싸여 일반 소비물자의 상당 부분을 「사이공」 이나 그밖에 지역으로부터의 공수에 의존하고있는 「후에」시의 경제가 파탄에 직면할 것은 명맥한 일이었다.
제1군단이 지난6월2일 「후에」시가 「사이공」정부에 굴복하기 직전까지 거의 모든 생활필수품 가격은 폭등, 「사이공」 에서는 30 「피아스터」 정도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휘발유 l 「갤런」 이 2천 「피아스터」까지, 「사이공」에서는 5백「피아스터」정도인 쌀 한가마가 5천「피아스터」까지 염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했다고 현지에 다녀온 외국특파원들이 말하고있다.
미국측이 미친 영향력은 특히 「투레」에서 「티」장군과 「키」 수상이 회담하기 2일전「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이 「후에」로「티」 장군을 찾아가 협상을 강력히 권유하여 그것이 꽤 주효했다는 것이며 지금의 월남 내분에 대한 미국측의 막후공작의 촛점은 이번사태수습을 통해 군내부의 통일성을 가급적· 파손되지 않도록 하고 「키」수상의 체면을 최대한 살리며 「트리·쾅」 승 같은 강경파를 고립화시킨다는데 두었다고 관측되고있다.
그래서 「티」 장군이 「트리· 쾅」 승과 헤어진 것은 지난3월 제l군 단장직 에서 해임될때「트리·쾅」승이 미리 알고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진부를 알기 힘든 얘기를 모측으로부터 듣고 적잖이 동요했다는 소문이 들고있다.
이렇게 볼 때 월남정국은「베트콩」전쟁을 별도로 친다면 3월10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징조가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오는9월15일까지 실시한다고 「키」수상이 거듭 약속한 헌법제정 의회를 과연 그때에 실시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실시에 있어 「사이공」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헌법제정의회가 구성되더라도 헌법제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 될때「키」 수상이 계속 버티고 앉아 있으려 할 경우의 사태는?
일부학생들과 불교도 강경파들의 반 「키」 정부감정이 지금까지의 대규모「데모」 가 가령 어려워질 경우 분산적인 소규모「데모」로 만성화할 가능성은 없는가. 그리고 「티」장군은 어떻게 예우할 것이며 반 「사이공」 정부행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제1군단산하 장병들의 장내 위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티」장군의 장래 대우에 관해서는 국방상으로의 기용설, 제1군단장으로의 복귀설 등이 「사이공」외교계에서 얘기되고들 있으나 아직은 「설」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지난해 「키」수상 자신이 수상직을 맡을 때처럼 어느 구석에서 「역전극」이 벌어질지도 알기 힘들게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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