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적 기관의 세계지배 진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가사회주의의 전망이 붕괴하고 경제와 문화의 전지구적 세계화가 진행되는 21세기 국제 질서를 마르크스이론의 재해석을 통해 조명하려는 신좌파의 대표적 이론가 안토니오 네그리(전 파리8대학 정치학교수) 의 최신작이다.

네그리의 이론을 미국에 주로 소개해온 마이클 하트(미 듀크대) 교수가 저술에 함께 참여했다.

이 책은 자본의 전일적 지배에 대한 대항논리를 개발하는 것은 전통적 사회주의와 같은 문제의식이지만, 자본의 지배형식이 개별 국민국가와 제국주의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론과 차별화된다. 이 책에서 제국주의는 용도폐기되고 그 자리를 '제국'이 차지한다.

개별 국가의 주권이 쇠퇴하고 대신 그 주권적 지위를 WTO.IMF.세계은행.유엔 등 일련의 초국가적 기관들의 규제가 차지하고 있다고 이 책은 진단한다.'제국'이란 바로 이들 초국가적 기구를 의미하며 맥도널드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다국적기업도 그 개념에 포괄된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초국가 단위에 둔 이 책은 세계적 질서를 지배하는 최종적 권위가 미국이라는 견해에도 반대한다. 유럽 열강들이 근대 이전에 국민국가의 주권을 토대로 구축한 제국주의와 달리 '제국'은 영토적인 권력중심을 만들지 않는 탈중심적이고 탈영토화한 지배 장치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에 대한 대항적 운동도 그 제국의 지배적 현실을 자각한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대중들에 의해 제국적 지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점은 저자들과 함께 '제국'에의 대안 논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재해석과 함께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타리.데리다 등 대표적 현대 사상가의 이론이 복합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만만찮은 저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