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대한민국 정사’는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제는 쓸 만한 때가 됐다고 봅니다.”

 한국 현대사를 총정리할 『대한민국사』(전10권) 발간 계획을 밝힌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의 말이다. ‘대한민국 정사(正史), 정부 수립 65년 만에 펴낸다’는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가 보도된 23일 오전, 이 기획을 총괄한 이태진 위원장과 편찬위원장을 맡은 김희곤(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안동대 교수는 “많은 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혹자는 역사학자들이 역사책 펴내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 있겠다. 그건 모르는 말씀이다. 한국사는 화약고다. 특히 근·현대사는 우리 사회의 이념분쟁뿐 아니라 온갖 갈등의 뿌리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는데 일단 우리 학계에선 격의 없는 대화가 부족했다. 현대사는 근대 국가의 성립·발전 과정에 대한 서술이 일반적이고 이 과정을 비판하건, 긍정을 하건 어떤 기준은 필요하기 마련인데 그렇지를 못했다.

 이태진 위원장이 “명색이 국사편찬위원회이면서 체면이 안 선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정사’가 없는 현대사의 빈자리를 이념 성향이 제 각각인 연구자가 개별적으로 펴낸 역사서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화의 소재도 많이 부족했다. 근·현대사는 대개 일제강점기 시대엔 독립운동, 해방 이후엔 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연속으로 이해되곤 했다. 토론의 소재가 다양해진 것은 1990년대 이후다. 두 방향으로 전개됐다. 한편으로는 탈냉전 흐름을 타고 사회주의권인 옛 소련과 중국의 현대사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부터다. 한반도 분단과 6·25전쟁 원인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론 한국 사회에 산업화의 결실이 하나 둘 나타나는 동시에 민주화까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대화의 방식도 문제였다. 다양해진 소재들이 건실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모적 이념 갈등으로 전개됐다. 우파에서는 배려가 부족했다. 세계사에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경제 발전을 이룬 사실만 강조할 것이 아니었다. 해방과 분단에 이어 전쟁까지 거친 그 짧은 기간 역사의 그늘을 보듬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했다. 좌파 또한 새롭게 등장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이제는 성숙한 대화를 나눌 학문적 성과와 여유가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고 본다. 통합의 시대다. ‘대한민국 정사’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다. 공감과 대화의 폭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경제개발과 민주화운동 양쪽의 역사를 고루 재조명하면서 이념적 편향을 극복한다는 원칙을 ‘대한민국 정사’가 완결되는 날까지 이어갔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소통도 그곳에서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