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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안 내면 집 강제수색 당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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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고급 아파트에 성남시 체납세 징수팀 공무원 9명이 들이닥쳤다. 이 아파트에 사는 A씨(44)의 집을 수색하러 온 것이다. A씨는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 지방세 5억8000만원을 체납한 상태였다. 그는 압류를 피하려고 아내 명의로 돌린 270여㎡짜리 아파트에 살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었다.

 문을 열라는 징수팀의 요구를 A씨는 들은 체 만 체 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한 징수팀은 경찰관 2명의 입회 하에 열쇠 수리공을 불러 강제 진입을 준비했다. 버티다 못한 A씨는 문을 열고 “압수수색 영장을 가져오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징수팀이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발행한 ‘범칙사건 조사 공무원 지명서’를 내보이자 그제야 반발이 수그러들었다. 징수팀은 집 안에서 그림과 고급 와인, 금목걸이, 그랜드피아노를 압류했다. 또 A씨에게 25일까지 자진 납부계획서 제출을 약속받고 가택수색을 마무리했다.

 성남시가 고의 상습 체납자에 대한 가택 수색을 강도 높게 벌이고 있다. 지난 한 해 체납액이 1200억원을 넘어서면서 체납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판단에서다. 세금 체납자에 대한 가택 수색은 지방세기본법과 국세징수법에 근거 조항이 있긴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또 세무공무원이 불시 방문을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성남시는 지난해부터 가택 수색을 강화했다. 변호사 출신인 이재명 시장이 법률 검토를 직접 하고 징수팀 공무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수원지검과 협의해 시청과 구청 세무공무원 15명을 범칙사건 조사공무원으로 지정했다. 지정된 공무원들은 고의로 세금을 체납하거나 징수 업무를 방해하는 이들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특별사법경찰관에 준하는 권한이다.

 이 같은 대응은 즉시 위력을 발휘했다. 검찰이 발급한 증명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체납자의 저항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열쇠 수리공을 동원해 강제로 문을 열자 체납자가 숨겨뒀던 재산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20여 명의 가택 수색을 통해 확보한 압류 물품을 처분해 4억200만원을 환수했다. 가택 수색이 이뤄지자 체납자들의 자진 납세도 줄을 이었다.

 성남시는 지난 한 해 동안 체납액 882억3600만원을 걷어 들였다. 전체 체납액(1261억5700만원)의 69.9%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이전까지는 연간 징수율이 40%를 밑돌았다. 2011년에 정리한 체납세(259억8600만원)의 3배가 넘는다. 성남시 이유태 징수팀장은 “다른 지역의 상습 체납자들도 가택 수색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남=유길용 기자

◆가택수색=형사사건의 증거나 관련 인물을 찾기 위해 피의자나 피고인의 주거지를 수색하는 것을 말한다. 조세범칙 사건에서도 체납자의 동산·부동산을 압류하기 위해 압수수색영장 없이 가택 수색이 가능하다. 지방세기본법(136조)과 국세징수법(26조)은 세무공무원이 재산을 압류하기 위해 체납자의 가옥을 수색하고, 잠긴 문·금고 등을 열게 하거나 직접 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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