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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만 표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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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대선에 패배한 민주통합당이 그래도 위안을 삼는 게 문재인 전 후보가 얻은 1469만 표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승리했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얻은 1201만 표보다 267만여 표 더 많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 바라보면 꼭 위안을 느낄 것만은 아니다.

 첫째, 역대 대선에 비해 지난해 유권자 수가 늘었다. 지난해 선거인 규모는 4050만7842명으로 2002년 대선(3499만1529명) 때보다 551만여 명이 증가했다. 2007년 대선과 비교하면 285만여 명이 늘어난 수치이기도 하다. 또 지난해 대선은 75.8%라는 기록적 투표율을 올렸다. 더욱 중요하게 지난해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보수·진보가 대표 주자를 한 명씩 내 1대 1 대결로 치러졌다. 표 갈림현상이 없었다는 의미다. 그러니 48.02%라는 민주당의 득표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패했지만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당 후보로선 최다 득표를 했다는 위안은 거꾸로 박근혜 당선인이 87년 이후 최다 득표로 승리했다는 평가의 쌍둥이에 불과하다.

 둘째, 보수·진보의 양대 대결로 치환하면 진보진영으로선 지난해 대선은 2002년에 비해 승패 여부를 떠나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02년엔 진보 표가 갈리고도 이겼지만 10년 후인 지난해는 단일 후보를 내고도 졌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과 문 전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3.53%포인트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2.33%포인트(57만여 표) 차이로 따돌렸다. 그런데 그때 민노당 권영길 전 후보도 3.89%나 얻었다. 나뉘고도 이겼는데 안 나뉘고 졌다면 민주당으로선 ‘왜일까’라고 따져 보는 게 우선이다.

 셋째, 보수·진보의 대결 구도를 1997년 대선에 적용하면 당시 김대중(DJ) 국민회의 후보는 이길 수 없는 선거를 이겼다. 당시 득표율 1% 이상을 얻은 후보는 DJ(40.27%),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38.74%),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19.20%), 건설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1.19%)다. 이를 보수(이회창+이인제) 대 진보(DJ+권영길)로 더하면 보수 57.94% 대 진보 41.46%로 진보진영이 승리하기 불가능한 구도였다. 그럼에도 DJ는 이인제 후보의 탈당 후 출마라는 보수의 분열과 DJP 연합이라는 진보의 확장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승리했던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 비교하면 민주당은 지금 위안보다는 고민이 더 적절하다. 합치면 이긴다고 믿었는데 과연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후보의 사퇴가 도움이 됐는지, DJ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도 합치며 영역을 넓혔는데 이번엔 진영 논리에 갇혔던 게 아닌지, 앞으로도 보수가 단일 대오로 나서면 과연 진보가 국민의 과반수 지지를 획득할 실력을 인정받을지 등 고민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숫자 얘기는 뒤로 돌리고 ‘1469만 표+α’를 만들려면 무엇을 바꿀지를 보여 주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