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로스팅하는 착한 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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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는 ‘카페 마놀린’의 민승경(44)·강대영(48) 부부 2 ‘유익한공간’의 아프리카 아동 구호를 알리는 코너. 3 홍제동 ‘A카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맛과 분위기다. 이는 지난 수 년 동안 혁신적인 기술과 예쁜 인테리어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이제는 맛과 더불어 나눔이 가게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맛있는 커피는 기본, 소통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커피 전문점을 찾아봤다.

“어머, 이게 다 커피 원두예요?” 동덕여대 앞에 위치한 ‘카페 마놀린’을 찾은 직장인 김희아(28)씨가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커피에 관련된 소품과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가득 있는 공간이다. 뛰어난 커피 맛과 아늑한 분위기는 덤이다. 지불한 커피값의 일부가 미혼모와 마약중독자, 장애인을 돕는 데 사용된다는 얘기를 듣자 박씨는 말한다.

“커피 한 잔 더 주세요!”

믹스 커피가 대세를 이루던 2002년, 강대영·민승경 부부는 카페 마놀린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다. 이탈리아·일본·브라질·인도네시아 등지의 커피 농장들을 둘러보며 공부한 덕분에 곧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단골들도 속속 늘어났다. 이들이 커피를 통한 기부를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강씨가 큰 병을 앓고 난 이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구세군에서 재활용품을 기부받아 가게 한 쪽에서 판매하며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과 커피 판매액 일부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다시 기부하는 방식이다.

헌혈증을 가져오는 손님에게는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 매주 두 번 이상 이 곳을 찾는다는 대학생 최다영(22)씨는 “헌혈을 해 이웃도 돕고 맛있는 커피도 공짜로 마실 수 있어서 일석이조”라며 “카페 마놀린은 기분 좋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전했다. 강씨 부부는 재능기부도 실천하고 있다. 인근 복지관의 지적 장애인들에게 커피전문점과 관련한 컨설팅을 해주며 카페 창업을 돕는다. 최근에는 동덕여대에 10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뤄진 기부다. “대단한 사람만 기부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무 것도 아닌 저조차도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셔도 기부를 할 수 있죠.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기부하는 맛까지 더해져 단골 손님 사로잡아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가게는 또 있다. 서대문구의 ‘A카페’와 ‘B카페’가 바로 그 곳이다. A카페는 커피숍, B카페는 제과 전문점이다. 가게를 운영하며 얻는 수익의 일부가 지역 봉사센터로 돌아간다. 이 곳은 독거 어르신들에게 반찬봉사를 하던 김혜미(48)씨가 봉사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문을 연 곳이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만든 액세서리를 위탁판매하고 수익금으로 인근 고등학교의 특수학급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커피와 빵 모두 맛이 좋아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강남구 역삼동의 ‘유익한 공간’도 나눔을 실천하는 공간이다. 기부라는 좋은 취지에 뜻을 같이 하는 기업들이 이 곳에 커피와 식재료를 후원해 주고 있으며 수익금 전액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아동을 위해 의약품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대부분인 강남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나눔’이라는 좋은 뜻을 확산시키며 단골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직장인 문정협(38)씨는 “아내와 함께 강남역 주변 카페 중 괜찮은 곳을 찾다가 발견했다”며 “차를 마시며 기부까지 할 수 있어서 더욱 특별한 공간으로 느껴진다”고 즐거워했다. 이 곳을 운영하는 국제아동돕기연합 신세용(38) 이사장은 “좋은 취지를 가진 가게라도 맛과 인테리어가 뒤쳐지면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며 “이왕 마실 커피라면 나눔을 실천하는 의미 있는 공간에서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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