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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고종수, "축구로 말하렵니다"

중앙일보

입력

'앙팡 테리블' 고종수(23.수원 삼성)에게 이번 겨울은 혹독한 담금질의 시간이 돼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앙팡(enfent.어린애)'이 아닌, 성숙한 청년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고종수는 기꺼이 껍질을 벗어버리는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 3개월간 고종수는 축구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8월 말 경기도중 당한 부상이 뜻밖에 중상으로 밝혀져 내년 월드컵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와중에 지난달에는 음주사건이 터졌다.

설상가상으로 대표팀 주변에서는 고종수의 몸 상태가 정상이었어도 대표 발탁은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콤팩트 축구' '속도 축구'로 서서히 자리잡아 가는 히딩크 축구에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지고 발 느린' 고종수가 끼일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히딩크 황태자'로 잘 나가던 때와 비교하면 완전 추락이다.

그러나 금호고 시절 고종수를 가르쳤던 기영옥 광양제철고 감독은 "고종수는 선 자세에서 왼발로 40~50m 킥을 날린다"며 "경기 흐름을 읽는 눈 등 천재성을 타고난 선수"라고 평가한다. 정종덕 KBS 해설위원은 "한 경기 중 적어도 서너차례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는다. 대표팀에 고종수 같은 키커가 없다는 것은 미스"라는 지론을 폈다.

며칠 전 고종수를 만났다. 신세대답게 튀는 대답과 자신감으로 가득찬 모습이었다.

-음주사건은 충격이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광주에서 친구들이 밤늦게 올라와 새벽에 만났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다. 세명이 소주 두병을 나눠 마셨다. 내가 폭력을 사용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과 다르다. 처음에 나에게 맞았다고 주장하던 피해자도 경찰서에서는 내가 가해자가 아니라고 인정했다. 한국 남자 치고 술 한잔 마시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몸관리 잘해 운동장에서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지 않나. 그러나 어찌됐건 축구팬들과 구단을 실망시켜 죄송하다. 잘못했으니 어떤 징계든 받겠다(수원 구단은 벌금액이 1천만원 안팎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나.

"답답했다. 술을 입에 댄 것도 중요한 시기에 다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원래 낙천적인 성격인데 음주사건 이후에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들에게 자주 전화를 걸게 된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역시 운동장에서 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소속팀 수원이 정규리그 막판에 고전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볼 때 가장 안타까웠다. 부상 직후에는 공을 차는 꿈을 꾸다가 실제로 오른발을 움직여 통증 때문에 잠을 깬 적도 있다."

-치료 일정에는 지장이 없나.

"왼발을 주로 쓰기 때문에 오른쪽 무릎을 다친 것은 처음이다. 슬개골(둥글게 만져지는 무릎뼈) 밑 십자인대가 끊어져 9월 초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팀의 주치의 파이퍼 박사에게 수술받았다. 지난달 중순까지 목발을 짚고 다녔지만 지금은 목발 없이 걷고 무릎을 굽히는데 불편이 없다. 목발이 히딩크 감독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아 주변에서 한때 '히딩크'라고 놀렸다(웃음). 예정대로 오는 22일께 독일로 재출국해 두달간 재활훈련을 받는다."

-그럼 언제부터 공을 다시 찰 수 있나.

"독일 재활훈련에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통한 근력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1월 말께 팀 훈련에 합류할 수 있다. 몸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볼 감각을 회복하는 데는 보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축구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대표팀에 다시 뽑힐 수 있을 것 같나.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나. 대표팀에서 필요한 시기에 내가 최상의 몸상태라면 다시 부를 것이다. 불러준다면 열심히 뛰겠지만 끝내 탈락해도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프로무대에서 열심히 뛰겠다. 컨페드컵 때는 고질인 잇몸 통증이 재발해 잠을 못잘 정도로 아팠다. 게다가 상대가 세계 최강 프랑스였지 않나. 왼쪽 날개 자리는 솔직히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없었다."

-히딩크 감독과 사이는 괜찮나.

"훈련 끝나면 장난도 같이 치고 경기에서 이기면 선수들과 함께 와인잔을 기울이는 자상한 면이 좋다. 한국 감독들은 훈련 후에도 군림하려 하지 않는가. 독일로 수술받으러 가기 전 박항서 코치를 통해 '유럽 축구계에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필요하면 얘기하라'는 말을 전해왔다."

-앞으로의 계획은.

"운동장에서 실력으로 고종수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다면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 가능하면 유럽에 진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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