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사용 설명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6호 27면

새해가 되면서 우리에게 찾아온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이다. 새로운 마음을 갖고, 새로운 계획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건 모두 새해라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 새해가 좋은 건 새롭게 시작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새해가 시작되고 여러 날이 흘렀다. 이즈음이면 처음에 가졌던 마음이나 계획이 흐트러지거나 잊힐 때다. 다시금 처음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삶과 믿음

1967년으로 기억한다. 새해를 맞아 이제부터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여가 시간이 생길 거라는 전망이 나온 적이 있다. 특히 컴퓨터의 발달로 사람들이 일주일에 이틀, 일 년에 22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로 누리게 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그 후 46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연 그렇게 되었는가? 오히려 컴퓨터 덕택(?)에 더 분주해지지 않았는가?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바쁜 게 좋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분주함을 능력 있는 사람의 표지처럼 여기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분주함이 서두름을 동반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서두름 때문에 잘못된 일들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분주함 속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도, 가치와 아름다움도 잊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서두름이란 그 자체로 사탄”이라고 말한 건 기억해둘 만하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습관을 갖는 것 역시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한 방편이 된다.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의 저자 스콧 펙의 제안처럼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삶의 의미와 목표를 발견하는 일이 먹고 마시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하루 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해보자. 그러면 의외로 시간이 넉넉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조그만 병 하나와 상당한 양의 모래, 그리고 수십 개의 자갈과 그 병에 겨우 들어갈 만한 큰 돌 하나를 보여주면서 조그만 병 속에 큰 돌과 자갈들과 모래를 모두 집어넣어 보라고 말했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 같았다. “어떻게 이런 조그만 병에 모든 것을 다 넣을 수 있어요?” 여러 학생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때 한 학생이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학생은 가장 먼저 큰 돌을 집어 들고 병 속에 넣었다. 다음으로 자갈들을 병 속에 넣었다. 그러자 자갈들이 큰 돌을 비켜 병 속에 스며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모래를 넣었다. 그러자 모래는 큰 돌과 자갈들 사이로 들어갔다. 이 또한 우선순위를 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다른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은 현재에 충실한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에 집착함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용기와 의욕마저 잃어버릴 때가 많이 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거나 아니면 미래에 대한 지나친 염려에 사로잡혀 오늘의 삶을 감사하면서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는 과거의 죄책감과 미래의 염려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자.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오늘뿐이기 때문이다.



박원호 장신대 교수와 미국 디트로이트 한인 연합장로교회 담임목사 등을 지냈다. 현재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한 주님의 교회 담임목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