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때론 사치 때론 수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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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28면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60) 알제리 태생으로 젊은 시절 신문기자로 활동했으며, 44세 나이에 최연소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작 『최초의 인간』 집필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골키퍼는 참으로 고독한 존재다. 골을 넣었을 때의 벅찬 감격과 환희는 맛보지 못하면서도 골을 먹었을 때의 온갖 비난과 야유는 혼자 다 뒤집어쓴다. 그래도 이런 고통과 분노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것이 골키퍼의 숙명이니까.
알제대학 시절 축구선수로 뛰었던 알베르 카뮈의 포지션이 골키퍼였다. 그는 골키퍼를 하며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공이 이리로 와줬으면 하고 바라는 그쪽으로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 사실은 내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할 때가 많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됐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28>『페스트』와 알베르 카뮈

에두아르노 갈레아노가 쓴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서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페스트(La peste)』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 문장이 퍼뜩 뇌리를 스쳐갔다. 책을 들춰보니 모두 5부로 된 이 작품의 2부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였다.
알다시피 『페스트』는 전염병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외부와 차단된 오랑을 무대로 하는데, 주인공이자 화자인 의사 리외는 오랑을 빠져나가려는 신문기자 랑베르에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성실성이란 누가 비웃든 말든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다. 마치 골키퍼처럼. 그래, 카뮈도 이런 생각으로 골문을 지켰을 것이다.

랑베르는 결국 떠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다 해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뭐냐는 리외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요. 하지만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리외는 의용대까지 조직해 페스트에 맞서 싸우지만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력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고 말하는 파늘루 신부를 향해 리외는 격렬하게 외친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파늘루 신부는 비록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신의 성스러운 의지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신이 원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닥쳐온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의 핵심을 향해, 바로 우리의 선택을 하기 위해 뛰어들어야만 한다. 어린애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에게 쓴 빵과 같다. 그러나 그 빵 없이는 우리의 영혼은 정신적인 굶주림으로 죽고 말 것이다.”

다행히 고난과 시련은 무한히 지속되지 않는다. 페스트도 물러났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비극은 이어진다. 헌신적으로 의용대를 이끌었던 동료 타루가 죽던 날, 리외는 과연 무엇이 남았는지 생각해본다.

“단지 페스트를 겪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우정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애정을 알게 되었으며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갖게 되리라는 것, 그것만이 오로지 그가 얻은 점이었다. 인간이 페스트나 인생의 노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에 관한 인식과 추억뿐이다.”

폐쇄됐던 항구에서는 축하의 불꽃이 솟아 오르고 사람들은 어느새 잊어가기 시작한다. 리외는 희생자들에게 가해졌던 불의와 폭력에 대한 추억만이라도 남겨놓기 위해, 재앙의 소용돌이에서 배운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해 글을 쓴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가지고 있는 악착 같은 무기에 대항해 수행해나가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수행해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페스트』는 리외가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의 외침소리를 들으며 이들의 환희가 항상 위협받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끝난다.“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뮈는 작품 속에서 축구 얘기를 가끔 하는데, 사실 그가 어린 시절 골키퍼를 보게 된 것은 신발 밑창이 가장 적게 닳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것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가난했다. 매일 밤 할머니는 그의 신발 밑창을 검사했고, 신발이 많이 닳은 날에는 혼이 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안과 겉』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가난이 나에게 불행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빛이 그 부(富)를 그 위에 뿌려주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나의 권리다.” 그래, 유난히 추운 올겨울에도 이 아름다운 햇볕은 얼마나 풍성한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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