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공일 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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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제는 학생과 함께 묶어서 기념하는「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날이 공일이었다는 것은 비록 우연한 일이었지만 두 가지의 뜻이 있었다.
하나는 박봉을 가지고 1년3백65일 고된 삶을 이어가는 나라의 교사들이 하루의 휴식을 취하는 휴일이었다는 것, 또 교사직 자체가 점점 「공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산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교사는 학기를 전수할 뿐 아니라 제자들의 덕육까지를 보살펴야하는 고매한 인격의 소지자이며,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여섯 척 떨어져서 감히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았다는 시절은 이제 지났다. 그 대신 초·중등교 교사들은 아이들의 입시준비를 도와주는 일종의 「두릴·마스터」로 전락해 버렸고, 학생들의 덕육에 대한 책임에서 제일 해방 되어있는 대학교수들은 그들이 가진 학문과 기능이 사회의 큰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다.
아이들한테서 돈을 거두는 고역이 싫어서, 학급 담임을 맡기를 결사코 거부하고 있다는 어느 여학교 교사가 있다. 젊은이들의 지덕을 아울러 보살펴 주는 스승이 아님은 물론, 입시보조원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젠 월사금과 잡부금을 거둬내는 수금원으로 전락해 버렸다면 서럽기 한량없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육, 덕육이 공전하고 사도는 공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일찌기 대학교수로 입신하려는 굳은 결심을 세우고 대학문을 두드린 우수한 학생이 대학 4년을 살아보고 나서 미처 경험해 보지도 못한 대학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환멸을 느끼고 보다 실리 있는 직업을 찾아나가는 예가 많다. 학술자체에 대한 의욕이나 동경이 점점 사라지고 반면에 호구의 압력은 날로 가중해져서 갖가지 학문의 꽃을 피울 뇌질을 가진 준재들이 학원을 등져가고 있는 것이다.
작금에 경향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화운동에서도 교사들은 그 뒷전에서 서성거리며 공일을 지키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교사들이 잃어진 권위와 위신을 되찾고, 학생과 학부형과 사회의 선두에 설 때 비로소 그 운동이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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