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제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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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회사들을 시찰하고 돌아온 동양의 어느 실업가가 구호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미국의 그 기능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귀국하자마자 자기 회사에 다음과 같은 표어를 붙여놓았다. 「주저하지 말고 지금 당장 뜻한 바를 실천에 옮겨라」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곧 실천하라는 행동에의 표어는 회사를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회계담당 사무원은 공금을 가지고 달아나고 여사무원들은 사직서를 내고 결혼을 해버렸고, 한편에서는 월급인상 투쟁을 위한 성토대회, 여비서와의 도피 등등…어머 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사장의 분부대로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곧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이 「유머」는 이념 없는 실천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암시해주고 있다. 실천적 행동은 중요하다. 그러나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관념이 없을 때 그것은 언제나 맹목과 저돌로 끝을 맺는다.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모럴 없는 행동」은 「행동 없는 모럴」처럼 무의미하다.
학원 정화의 봉화가 전국에 퍼져가고 있다. 그 구호 가운데는 「이성으로 생각하고 지성으로 행동하자」는 것이 있는데 요체를 찌른 말이다. 어떤 운동이든 「생각과 행동」이 결합되어 있어야 비로소 성공의 씨앗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생각만 있어서도 안 되고 행동만 있어서도 안 된다.
만약 학원 정화를 뒷받침하는 이성적인 생각(이념)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행동은 정치적인 이용물이 될 것이다. 학원을 정화한다는 미명 아래 청소년의 영웅심이 어디로 빗나갈 지 모른다. 더구나 학생들은 아직도 배우는 신분,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세대여서, 「돈·키호테」적인 행동파는 비극을 저지르게 된다.
풍차를 기사로 오인하고, 남의 집 식모를 공주로 착각하여 만용을 자행하는 「돈·키호테」…. 학원 정화의 운동에 있어 너무 외면적인 행동만 보고 박수를 쳐서는 안되겠다.
좀 더 조용하게 「생각하는」 운동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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