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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중국경제 대장정] 7. 개방 앞둔 중국 금융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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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上海)를 가로 지르는 황푸(黃浦)강 서쪽의 와이탄(外灘)이 전통적인 금융 중심지라면, 동쪽 푸둥지구의 루자쭈이(陸家嘴) 금융구는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월스트리트'다.

루자쭈이 한복판의 상하이증권거래소 로비에 들어서면 황소 한 마리가 돌진하는 조각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황소(bull)는 증시에서 활황 장세를 뜻한다. 침체 장세를 의미하는 '곰(bear)' 조각상은 아예 없다.

적어도 지난 6월까지 중국 증시는 '황소'가 지배해 왔다. 1990년 상하이, 이듬해 선전(深□)에 거래소가 생긴 이후 10년 만에 상장기업수는 1천2백여개로 1백배, 시가총액은 4조4천억위안(약 7백조원)으로 50배가 늘었다. 상하이와 선전을 합하면 도쿄(東京)에 이어 아시아 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상하이 증권가는 요즘 '곰의 위력'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지난 6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주가가 내리 넉달째 곤두박질 치면서 30% 가까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에서 5백m쯤 떨어진 상하이증권 1층 객장에 설치된 전광판도 주가 하락을 나타내는 푸른 색이 완연했다.

지난 2월 외국인 전용인 B주를 내국인도 사고팔수 있도록 한 후 봄철 내내 붉은 색으로 물들었던 전광판이 막상 가을녘엔 푸른 색으로 바뀌어 계절을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객장에서 만난 한 40대 주부는 "지난 5월 산 컨카(康佳)B주가 반토막이 났다"며 울상을 지었다.6월초 13.1 홍콩달러까지 치솟았던 컨카B주는 10월 22일 현재 4.8 홍콩달러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하오(中浩)B주는 75%, 둥하이(東海)B주는 70.5%, 메이린(梅林)B주도 61.1%나 폭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진 미국의 항공기 테러사건은 중국의 수출에도 먹구름을 몰고 올 판이다.

이만하면 상하이 증권가의 기세도 한풀 꺽였으리라 짐작하고 현지의 애널리스트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올 상반기 B주의 급등을 예언해 상하이 증권가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상하이스지(上海世基)투자자문의 정민(鄭旻)씨는 "그동안 중국 증시의 활황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이제부터가 본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주가하락은 올 상반기 B주가 너무 많이 오른데다 지난 7월 은행의 불법 주식투자를 당국이 집중조사하면서 조정을 받은 것"이라며 "곧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중국에선 은행의 주식 투자가 금지돼 있다. 그러나 거의 대다수 은행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증권가에선 이 자금이 5천억~7천억위안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가총액의 약 7분1이나 된다.

중국 정부가 지난 7월 증시 투명성을 높인다며 자오퉁(交通).중궈(中國).화샤(華夏)은행 등의 불법 주식 투자를 적발, 처벌하자 온갖 불법 자금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 버렸던 것이다.

상하이 증권가에선 이런 조치가 길게 보면 증시에 '보약'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그간 복마전(伏魔殿)으로 비쳐진 중국 증시의 이미지가 좋아지리란 기대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홍콩 증권감독원 출신의 량딩방(梁定邦).스메이룬(史美倫)같은 불공정 거래 조사 전문가를 영입한 것도 이런 의도란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주가 폭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증시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중국 증권업계 2위인 궈타이쥔안(國泰君安) 증권의 애널리스트는 "내국인 전용인 A주 시장에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하나"라고 단언했다.

올초 외국인 전용 B주를 내국인에 개방했듯 내국인 전용 A주를 외국인에 개방하는 것도 시간문제란 것이다.

현대증권 상하이 지점의 조강호(趙康鎬)대표는 "그간 은행 대출에 90%넘게 의존해 온 중국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이젠 한계에 왔다"며 "중국 증시의 본류인 A주 시장 개방을 통해 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방은 중국증시에 보약만은 아니다. 선진 투자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인투자자들에게 중국증시가 휘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가 주인이라는 명목으로 보호해왔던 덩치 큰 기업들이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혀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중국정부만 손에 쥐고 있던 기업의 각종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중국기업의 감추고 싶은 진짜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기업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사태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정성재(鄭聖在)하나은행 상하이 지점장은 "중국정부는 최근 뮤추얼펀드 설립이나 보험사의 주식투자 허용 등을 통해 기관투자가의 비중을 크게 높이는 방안을 추진중"이라며 "국제무역기구(WTO)가입으로 곧 다가올 금융시장 개방을 앞두고 사전에 증시 체력을 다져놓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상하이 증권가는 개방이 가져다줄 단꿈에 젖어있다. B주 시장의 20배가 넘는 A주 시장이 개방되면 올 봄 B주가 주도한 활황 장세는 저리 가라 하는 '대박'이 터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개방은 중국증시를 국제 금융시장의 질서속에 집어넣게 된다. 문을 걸어잠근 덕택에 97년 아시아 각국을 휩쓸었던 외환위기의 태풍을 피할 수 있었던 중국시장도 앞으론 국제 금융시장의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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