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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인|이젠 감정의 정당화가 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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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와 일본사람들 사이의 감정이 어느 때에 가서 어느 정도로나 풀릴는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나라의 이름으로는 조약도 협정도 새로 맺고 소위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고 하지만 국민감정의 「정상화」(이런 말이 적절할는지 모르지만)를 도모하는 일은 이제부터 일 것이고, 또 그것이 자못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 우리네감정이 일본사람들의 과거를 용서키 힘들만큼 가슴에 깊이 멍들어 있는 터에 저 일본사람들의 그후의 움직임 속에는 여전히 웃고 넘겨버리기 어려운 뿌리깊은 것이 또 상당히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일본사람들이 상당히 빈번히 한국을 찾아오는 중 며칠 전에는 소위 「경성중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의 동창회원이라는 일본사람들이 밀려들었다. 그들의 말로는 사람은 일본사람이나 한국에서 나서 한국에서 자라난 「순 한국산」이라고 하면서 마치고향에 찾아온 듯 하다고 어떤 「감격」의 정을 표시하는 듯이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본다. 「경성중학교」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못살게 굴며 한국착취에 가장 유능하고 유력하던 소위 「명명」높은 일인들의 그 자제들이 다니던 학교였고, 또 경성중학교라고 하면 배재중학교 학생들과의 싸움이 기억에 떠오른다.
대부분 남산 밑에서 살던 경성중학교 아이들의 다수가 정동 골목으로 경성중학교에 다니며 이화학교의 우리네 처녀들에게 더러운 말로 모욕하고 희롱질을 했다.
그 때문에 배재학교 학생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저들에게 대항하여 피를 흘리는 싸움을 했다.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배재학교를 쉬게까지 했던 것이다.
광주학생사건 같은 것은 벌써 전에 서울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때의 그 젊은 사람들이 한 떼를 지어 달려들며 「고향」에 온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기가 차다』는 느낌이 아니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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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과 지배를 목적으로 이 땅에 와서 살던 그 일인들의 우리네에 대한 경멸과 모욕의 태도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센징」이니 「여보상」이니 하는 그들의 그 말의 어감에는 우리네가 저들을 가리켜 「왜놈」이란 정도가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면 오늘 한·일간에 평화가 오고 새로이 국교를 정상화하자는 이때에 옛날의 악감정을 되살리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고 할 사람도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 옛날의 감정을 씻어버리자면 저들의 죄과는 확실히 밝히고 나서 그것을 어떻게 씻어버릴 것이냐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저 일인들의 지배 밑에 살던 그때의 청소년들로서 가장 가슴 아픈 일 중의 하나가 학교에 체대로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네 사립학교란 것은 몹시 탄압하여 대부분 문을 닫게 하고 아니 남길 수 없는 중학교와 미국선교회의 전문학교 몇 곳을 남겨두었었다. 그러고 고등교육기관이라고 일인들이 세운 학교란 것은 그대부분이 우리네 한국사람들에게 입학을 제한 허가하는 것이었다. 한국사람은 3분의1밖에 넣지 않는다고도 했다가 다시 일인학생의 3분의1을 넣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경성제국대학」이란 것을 세웠을 그때에도 그 입학제한은 학생수효에뿐 아니고 그 가정을 엄격히 조사해서 「불온」치 않다는 경찰의 조사보증서가 붙지 않고서는 입학이 허가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교의 감독이 엄할 뿐 아니라 일인학생들의 다수의 위세 밑에 한국인학생들이 기운을 펼 수 없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부만은 한국학생들이 늘 우수했다. 그 때문에 일인교수들이 하소연하는 좌담회 글을 발표하나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에 그렇던 우월감을 가지고 모욕과 멸시를 마음대로 해온 대표적인 그 일인들이요, 그들의 자제가 무리를 지어 밀려오면서 새삼스럽게 정다운 듯 「고향」을 쳐드는데 그 「고향」의 정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네가 당황치 않을 수 없다. 한·일 회담 때 「구보다」대표의 우리대표에 대한 모욕적인 폭언이라든지 또 한국에 남겨 놓고 온 저들의 살림집이며 가산을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자기 소유로 도로 찾을 수 있을 듯이 회담석상에서 주장하던 그것이 바로 어제일 같은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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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컨대 한·일 간의 문제는 조약이나 협정의 조인이나 비준에 문제가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국민간의 진정한 이해를 구하는데 있을 것이다. 국민간의 이해라는 것은 서로진정으로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국민간의 이해는 어디서부터 출발될 것이냐 하면 그는 일본사람들의 한국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작년에 「시이나」일본 의무장관이 한국에 왔을 때에 성명을 발표한 가운데 약간 옛날의 한·일 관계에 관한 무엇을 말하기는 했으나 그런 것으로는 진정한 사과의 성명은 될 수 없었다.
앞으로 현 일본 수상 「사또」씨의 현이 오는 6월 달엔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는데 과연 무엇 때문에 오는 것이냐, 그는 「사과」의 사절이겠느냐 무엇이겠느냐, 또 「사또」수상이 그 뒤로 한국을 방문한다는데 한국 땅에 내리면 무슨 말로써 한국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것인가. 우리가 그분들에게서 사과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써 족할 것이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친선」의 성명은 근 반세기동안 일인들이 이 땅에서 무슨 짓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했는가를 들이켜 생각해 본다면 「사과」의 인사는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범절을 갖추어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친선」의 방문만이 무엇을 뜻할 것이냐, 고향은 무슨 고향을 찾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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