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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으로 오가는 우정있는 설복|두 고아 구두닦이의 「편지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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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종로 2가 기독교청년회관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안기호(21)군은 방금 받은 「월남에서 온 편지」를 뜯었다. 발신인은 옆자리에서 나란히 구두를 닦던 고아친구. 지금은 「맹호부대」제316부대 10중대 소속으로 월남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홍기석(22)병장이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기독교청년회관 옆 담뱃가게앞」으로 되어 있었다.
70「달러」의 땀 맺힌 선물과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홍 병장의 사진 한 장도 편지 속에서 나왔다. 구두통에 걸터앉아 안 군은 더듬더듬 월남 편지를 읽어갔다. 『기호야, 월남에 와서 검둥이가 됐다. 지금 야자수 밑에 앉아 네가 보낸 「하모니카」를 불어본다. 나는 여기서 전쟁 고아인 너와 나의 설움을 「베트콩」에게 갚아주겠다. 기호야,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말고 올바르게 살아가자…』 꼬불꼬불한 글씨지만 같은 고아친구가 같은 구두닦이 형제에게 보내는 마디마디 정에 찬 편지였다.
홍 병장과 안 군은 똑같이 6·25때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 자기들의 나이조차 확실히 모른다. 스물 한 살쯤 되었을 거라고 짐작들을 할 뿐이다. 두 사람은 57년 6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상암동 「삼동 소년촌」에서 처음 만나 5년 동안을 함께 지냈다. 수색국민학교를 함께 졸업, 나이가 넘자 소년촌을 나와 기독교 청년회관 앞에서 구두닦이를 시작한 것이 61년 4월. 이 곳에서 4년 동안 어깨를 나란히 구두를 닦았다. 유혹도 많았다.
한 때 「꼬찡이」파의 협박도 받았다. 설움과 울분을 서로 나누며 이들은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64년 1월 홍군은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홍군이 모처럼 휴가를 나와도 찾아갈 곳은 기독교청년회관 옆 길바닥 밖에 없었다. 휴가 때는 홍 병장은 안 군과 나란히 앉아 구두를 닦았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홍 병장은 맹호부대에 편입되어 월남으로 떠나갔다. 집이 없는 그들에겐 물론 주소가 있을 리 없다.
그 때문에 월남에 간 홍 병장과의 소식이 끊어져 한동안 안 군은 무척 궁금해했다. 「기독교청년회관 옆 담뱃가게 앞」이란 주소로 뜻밖의 첫 편지가 온 것은 작년 11월 어느 날. 월남의 홍 병장 쪽에서 먼저 생각해 낸 자기들만의 「번지수」였다. 두 사람의 정은 다시 연결되었다. 안 군은 곧 번돈을 전부 털어 「하모니카」와 열병 예방약·만년필·손톱깎이 등을 사들고 평생 처음 국제우체국에 달려갔다.
안 군은 담뱃가게 아주머니가 매주 한 번씩 전해주는 홍 병장의 편지를 그동안 29통이나 받았고, 그 때마다 서울의 선물을 잊지 않고 부쳤다. 홍 병장이 월남에서 부친 30번째 편지는 종로경찰서 수사계장 주덕식 경감 앞이었다. 지난 25일 주 계장은 이렇게 간곡한 편지를 받은 것이다.
『계장님 보시옵소서- 먼저 저의 인사를 받으셔요. 저는 6·25때 고아가 된 몸으로 수색 고아원을 나와 종로 구석구석을 헤매면서 구두닦이를 했읍니다. …(중략) …저는 불행 속에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친구에게 조그마한 성의이지만 송금을 하였어요. 기독교청년회관 옆 골목 「종로소리사」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안기호 입니다. 그는 절대로 빗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 계장님, 그에게 불행이 없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그가 착한 사람되게 인도해 주십시오. 월남에서 홍기석 올림』
주 계장은 그 날로 안 군을 찾아가 의자 하나를 사주고 그를 보살펴 주기로 했다. 안 군은 이 기쁜 소식을 홍 병장 앞으로도 띄워주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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