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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징궈와 시진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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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엊그제 방북 일정을 마친 에릭 슈밋 구글 회장 일행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들렀다.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오는 현장에 가면 늘 만나는 중국 기자가 있다. 지난해 2월 VIP 통로로 나오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쫓아가며 협상 전략을 취재하던 근성 있는 기자다. 김 부상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자를 뿌리치기 위해 “플리즈 웨이트(좀 기다려 줘)”라고 했던 말이 와전돼 “위 윌 웨이트(우리는 기다릴 것이다)”로 알려지기도 했다. 직접 들었던 당사자에게 김 부상의 정확한 답변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봤던 사연을 지면에 소개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넷 전도사 슈밋 회장과 최악의 인터넷 통제국가 북한이 서로 실익을 챙긴 모양새 아니냐’고 가볍게 물었다.

 “답할 수 없어. ‘플리즈 웨이트’를 신문에 썼잖아.”

 그 글은 중국어로 번역돼 인터넷에 풀린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모를 일도 아니다. 중국에 주재하는 특파원들의 기사는 파견 국가의 중국대사관이 번역해 중국 외교부와 국무원 신문판공실 등 유관 기관에 전파된다. 이 때문에 공산당의 통치 이념과 정책의 선전 기구로 정의된 언론기관에 흘러들어가지 말란 법도 없다. 말초신경까지 다잡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관리·통제 시스템은 이렇게 무시무시하다.

 광둥(廣東)성의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 기자들의 파업 사태로 새해 중국 정가가 시끌시끌하다. 정치개혁을 촉구하려는 기사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의식한 용비어천가로 바뀌자 기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시진핑이 부패척결·개혁 의지를 천명하자 중국과 화교권 일각에선 대만의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에 빗대어 중국판 민주화와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을 쏟아낸다.

 아마도 장제스(蔣介石) 선대 총통에 이어 권력을 계승한 장징궈와 태자당으로 분류되는 시진핑의 출신 배경을 오버랩시키며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어대는 모양이다. 장 전 총통은 1949년 이래 계속되던 계엄을 38년 만에 해제하고 절차적 민주화의 길을 연 지도자로 대만인들의 추앙을 받는다. 세월이 흘러 그렇지 미국과의 단교 이후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고, 저항 잡지 ‘메이리다오(美麗島)’ 탄압으로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장징궈 정권으로선 피할 수 없는 칼이었다.

 당시의 대만과 현재의 중국은 상황이 다르다. 시진핑이 국내외 압력에 밀려 정치개혁과 서구식 민주화, 언론 자유화에 나설 가능성은 몹시 희박하다. 시진핑은 민심 이반에 대처하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음지에서 창궐하는 부패에 자유 언론만 한 처방도 없다. 언론의 속성상 일단 재갈이 풀리면 공산당 일당독재의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딜레마일 터. 시진핑 총서기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