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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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즈음 저축을 권하는 표어 가운데 기발한 것이 많다. 그 중에는『이자로 생활하자』운운하는 것도 있다. 돈을 저축해서 그 이자로 살자는 것이다. 「랑티어」 즉 금리 생활자가 되라는 말이다. 금리생활이라면 구두쇠 고리대금업자가 곧 연상된다. 「랑티어」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비생산적인 사회계층이다. 이 족속은 생산에는 기여하지 않고 소비에만 참여하는 대표적 유한계급이다. 금리생활이 미덕이 될 리가 없다.
그런데 요즈음엔 좀 달라진 모양이다. 「금리생활」을 장려하는 표어가 활개칠 정도니까. 아마도 은행을 통해서 이자생활을 하는 것은 그 동기에 있어서 실리대금업자와 같을망정, 그 경제적 효과가 다르니까「랑티어」가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자로 산다는데 있다. 고리를 받건 저리를 받건, 어떤 수단을 쓰건 관계없이 금리생활자는 금리생활자다.
소시민으로부터 대재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처럼 금리의식이 생활 깊이 파고들어 있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자들이 몇 명만 모이면 으레 계가 생긴다. 심지어는 공익 재단이 고리대금 부업으로 하는 일까지 흔히 있다고 한다. 월급장이들의 신세타령 끝에는 돈 몇 십 만 원만 있으면 다 집어치우고 은행 이자만 갖고 살아도 월급보다 낫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16년 고생해서 대학 나와봐야 1만원 월급이 고작인데, 이건 월 2분5리로 쳐서 고작 50만 원 예금액 가치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금리생활을 미덕으로 아는 풍조가 점점 퍼져서, 너도나도 신흥「랑티어」계급이 되려 발버둥치는 건… 우울한 일이다. <박찬문·은행원·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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