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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작곡가 구바이둘리나 '고희 찬가'

중앙일보

입력

"주여 나를 작곡가로 만들어주신다면 어떠한 고통도 참아내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 타타르 출신의 한 소녀는 들판에 꿇어앉아 간절히 기도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러시아 작곡가가 됐다. 지난 24일 70회 생일을 맞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사진) 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할 때 쇼스타코비치는 등을 두드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너는 '잘못된 길'을 계속 가라."소련 당국이 제시한'모범'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한 까닭에 한동안 소련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게 공식 금지된 적도 있었다.

구바이둘리나가 소련 당국으로부터 처음으로 서방 여행을 허락받은 것은 1985년. 그후 서방의 연주단체들은 앞다투어 그의 작품을 연주했고 신작 위촉도 줄을 이었다. 92년엔 아예 독일 함부르크 교외로 이사했다.

구바이둘리나의 70회 생일을 맞아 기념공연과 관련 서적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고향인 타타르공화국 카잔에서는 지난 21~22일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합창단과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가 'T S 엘리엇에게 바침''타타르 춤곡''요한 수난곡' 등을 연주했다.

독일에선 구바이둘리나 전기가 출간됐고 러시아에서 출간된 발레리아 체노바스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에 나타난 수(數) 의 신비』도 독일어로 번역 출간됐다.

미국에서도 11월 뉴욕필하모닉이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와의 협연으로 '비올라 협주곡'을 초연하며, LA필하모닉과 미네소타오케스트라는 대표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오퍼토리움'을 연주한다.

구바이둘리나는 최근'성 요한의 부활절'을 탈고했다. 내년 봄 부활절 시즌에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북독일 방송교향악단과 합창단의 연주로 초연될 예정이다.

그의 작품은 성악이나 타악기, 재즈밴드를 곁들여 이국적이고도 새로운 음색을 추구하면서 직관과 영혼에 호소하는 신비감을 주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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