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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천원권 뭉치' 수금 거부

중앙일보

입력

부산의 시내버스업체인 G버스 경리담당인 강모(31)씨는 최근 시중은행의 '수익좇기'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회사 특성상 하루 600~700장씩 들어오는 1천원권이 주수입이지만, 대다수 시중은행이 처리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입금을 받아주지 않고 있기 때문.

지난 26일에도 평소 거래하던 10여개의 은행지점으로부터 모두 퇴짜를 맞은 뒤 부산 동구 범일동 P은행 본점까지 찾아갔으나 출납계 직원은 1천원권이 남아돈다며 입금을 거부했다. 강씨는 장시간 은행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인 끝에 가져간 2천만원 가운데 500만원을 겨우 입금할 수 있었지만 27일로 예정된 직원들 교통비 지급은 어쩔 수 없이 며칠 뒤로 미뤄야 했다. 강씨는 '1천원권 입금 거절로 자금회전이 안돼 어음결제를 못할 때도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G버스보다 규모가 큰 B여객 역시 1천원권 통용이 안돼 자금회전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B여객 직원 오모(42)씨는 '은행 입금이 하도 어려워 최근에는 백화점,할인점 등에 1천원권을 파는 방법까지 동원,인력과 시간 낭비는 물론 안봐도 될 금전적 손실까지 보고 있다'고 푸념했다.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부산의 39개 버스업체와 87개 마을버스업체가 승객 요금으로 매일 받는 1천원권 규모는 20억~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9일 취재진이 시내 H,J,K 등 각 시중은행 지점에 전화를 통해 1천원권 입금가능 여부를 확인해 본 결과 대다수 은행이 1천원권 수요가 없다며 입금을 거부하거나 소액만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 은행 출납계 직원은 '인력이 없어 1천원권을 정사(폐권을 구분하는 일)처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수요가 있는 지점에 돈을 팔려면 수송비용만 건당 20만~30만원이 들기 때문에 모든 은행이 입금을 기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IMF사태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은 은행들이 저마다 수익경영을 부르짖고 있지만 소액권 입·출금,공과금 납부처리 등 창구업무 인력을 감축해 이른바 '돈 안되는' 서민들에 대한 서비스를 대폭 줄이는 대신 계좌유지 수수료,자동화기기 이용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를 신설하는 방법으로 수익개선에 나서고 있어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H은행이 최근 신설한 동전 수수료는 시중은행의 지나친 수익좇기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 이 은행은 지난 4일부터 동전 교환시 2%의 수수료를,5천원 이상일 때는 건당 5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회사원 장모(29·부산 사상구 괘법동)씨는 '앞다퉈 신설 중인 각종 수수료 수입만큼 서비스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데 은행 문턱만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은행들의 고객 서비스 실종현상을 비판하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으며,10월 들어 은행들의 소액권 처리 거부행태의 시정을 서면으로 요구한 수만 6건이 접수됐다는 것.

한국은행 발권기획팀 관계자는 '은행들이 주화 수급 중계업무 등 적극적인 고객유치 전략은 세우지 않고 비용감축에 치중하는 행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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