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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재를 키우자] 4. 스웨덴 볼보 - 빈틈없는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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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일주일에 3~4일을 출장으로 보내는 레이프 요한손(51)회장은 연말이 되면 더욱 시간을 쪼개 써야 한다. 새해 사업계획을 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그룹의 최고 인사담당(HR) 임원인 켈 스벤손(55)부사장도 덩달아 바빠진다. 회장과 매일 머리를 맞대고 지난 한해 동안 핵심 인재가 한 일들을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볼보엔 '프레지던츠 리뷰(President's Review)'라는 비(秘)파일이 있다. 전체 임직원 7만9백20명 중 1%도 안되는 '핵심 중 핵심' 인재인 5백명의 신상자료가 빼곡히 담겨 있다.

전체 임직원의 인력관리 데이터베이스(Employee Profile Database)에서 뽑아낸 것으로, 회장이 직접 챙긴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회장과 스벤손 부사장은 지난 일년 동안 핵심인력들이 개인개발 계획에 따라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한달간 점검한다. 자질이 떨어지는 인력은 핵심 인재군에서 탈락시키고, 두드러진 성과를 낸 인재는 새로 발탁한다.

핵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볼보의 기본 전략은 '인재는 키우는 것'이다. 기자가 요한손 회장에게 "최고경영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핵심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향후 10년간 볼보의 최대 현안은 핵심 인재의 확보"라고 덧붙였다. 핵심 인재들이 참여하는 세미나에는 빠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외부 수혈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회장 자신부터 1997년 가전업체인 엘렉트로룩스에서 사장으로 일하다 볼보의 최고경영자(CEO)로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이는 아주 드문 예다. 스벤손 부사장은 "핵심 인력은 보통 사내에서 선발.육성한다"고 설명했다.

◇커리어도 회사가 관리=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에릭 닐슨(43)사장도 요즘 매우 바쁘다. 업무도 바쁘지만, 다음달로 예정된 자신의 인사고과 면담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닐슨 사장은 전체 볼보그룹에서 2백25명밖에 안되는 핵심 보직자(Key Position Holder)라 더욱 챙길 게 많다.

볼보는 핵심 인재를 세 그룹으로 나눠 관리한다. 최상위 그룹은 닐슨 사장이 속한 핵심 보직 인력이다. 기업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룹의 장기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본사의 최고위 임원들과 해외법인 계열사 사장단, 사업부문장 등 2백25명이 이 그룹이다.

그 다음이 잠재력이 높은(High Potentials) 인력이다. 2년 이내에 승진해 핵심 보직을 떠맡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2백75명의 간부직원들이 해당된다. 마지막은 잠재력이 있는 인력(Potentials)으로 5년 안에 두 단계 승진이 가능한 역량을 가진 임직원 6백명으로 돼 있다.

닐슨 사장은 지난해 2월에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토니 헬스함 건설기계 부문 총괄대표를 만나 개인개발계획(Personal Development Plan)의 성과와 관련한 면담을 했다.

그는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강점 및 개선분야를 파악하기 위해 전년도 업적을 점검했다. 또 현재의 업무능력과 앞으로 1년 후 도달해야 할 목표치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눴다.

이처럼 볼보는 핵심 인재들에게 '리더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더 개발해야 하며, 어떤 일을 맡아야 할지, 무슨 교육을 받는 게 좋은지'를 짜준다. 회사에 있을 동안의 커리어를 관리해 준다는 얘기다. 개인개발 계획이 대표적인 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당사자와 상사가 함께 앉아 의논해 수립한다. 당연히 회사가 핵심 인재의 능력과 발전 가능성에 대해 세밀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수립된 개인개발계획을 참조해 회사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순환 배치도 한다.

핵심 인재만을 위한 별도 모임도 있다. 핵심 보직인력의 경우 매년 한차례, 이틀에 걸쳐 그룹의 발전 방안과 같은 장기적인 경영 이슈를 논의한다. 잠재성이 높은 인력들은 '에지(The Edge)'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연간 네번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한번 할 때마다 일주일간 열리는데, 이 기간 중 요한손 회장이 직접 내준 경영과제를 푼다. 한번에 24명이 참석하며, 지난해는 영국과 중국.스웨덴에서 열렸다.

스벤손 부사장은 "지구촌 비즈니스 환경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핵심 인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리더십이 가장 중요=볼보는 핵심 인재의 선발.양성시 성과 위주의 능력만능주의는 경계한다. 리더십을 가장 중시한다.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발휘해도 리더십이 없다면 동료와 부하직원들의 협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이 회사엔 '볼보의 길(Volvo Way)'이라 불리는, 모든 임직원들이 준수해야 할 업무상의 기본 지침이 있다. 훌륭한 리더는 모범이 돼야 하며, 애사심이 있어야 하고, 일관된 업무 수행을 통해 존경을 받아야 하며, 종업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인재를 '톱 리더십(Top Leadership)'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리더십을 강조하는 것은 볼보가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근무하므로 특정 국가의 방식이 최선이라고 고집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요한손 회장은 "다음 세대의 최고경영자(CEO)는 사람들을 선입견 없이 만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테보리(스웨덴)=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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