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헬스] 공포의 탄저병 세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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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학을 전공한 의사들에게 익숙한 탄저병이란 용어가 이젠 삼척동자도 아는 질환이 되었다.

그러나 의학의 역사에서 탄저병은 그리 낯선 질환이 아니다. 위대한 천재들의 불후의 업적들이 바로 이 탄저병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1876년 흙 속에 사는 탄저병 세균에 의해 가축에게 탄저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한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는 전염병이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당시만 해도 전염병은 나쁜 공기나 악령의 저주 등 비과학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았다. 의학의 영원한 고전이기도 한 '특정 병원균이 특정 질병을 일으킨다'는 이른바 '코흐의 가설'도 탄저병에서 비롯된 것이다.

1881년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탄저균을 약화시켜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약독화(弱毒化)세균 백신을 개발했다. 뒤이어 러시아의 생물학자 메치니코프는 세균을 잡아먹는 탐식 세포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한 세균도 탄저병 세균이었다.

지금 탄저병 세균은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고 보면 의학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세균인 것이다.

최근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미국의 탄저병 사태가 명백히 불순한 의도에 의해 살포된 비자연적 현상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탄저병 세균이 달라진 것은 없다. 문제는 인간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무덤 속의 코흐나 파스퇴르가 작금의 사태를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하다.

전재석.을지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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