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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 공략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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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복
워싱턴특파원

기자 생활 하면서 자주 듣는 조언 중 하나가 평소 취재의 중요성이다. 늘 이슈를 챙기고 취재원을 관리해야 중요한 순간에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땐 크게 티 나지 않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내공이 드러난다. 국가적으로 봐도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 재난 시스템이 얼마나 제대로 돌아가는지 검증할 수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일이 터진 다음에 수습하려 들면 공사가 크게 마련이다.

 지난 3일 미 의회 개원식을 취재하면서 평소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날 기자는 풀뿌리 한인 로비단체를 표방하는 시민참여센터(옛 한인유권자센터) 회원들과 동행하는 기회를 얻었다. 뉴욕에 본부를 둔 센터는 이날 2년의 새 임기를 시작한 의회와의 관계설정을 위해 워싱턴을 찾았다. 이들은 하원 외교위원장 에드 로이스 의원과 애니 팔레오마베가, 빌 파스크렐, 마이크 혼다 의원 등을 차례로 만나 한인과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이민규제 완화와 북핵 문제 해결 등 일곱 가지 요구 사항을 담은 서한도 전달했다. 의원들은 진지하게 내용을 물어가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문턱 높기로 유명한 연방의원들이 이토록 흔쾌히 시민참여센터 회원들을 만난 건 축적된 신뢰 덕분이다. 센터의 산파 역인 김동석 상임이사는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을 계기로 한인 유권자 운동에 뛰어들었다. 한인들에 대한 정치적 배려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고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한인 유권자들을 규합해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후원하고 압력도 넣었다. ‘표와 정치헌금’을 무기로 한 20년간의 노력으로 한인 입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7년 연방하원에서 역사적인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끌어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의회 권력은 갈수록 세지고 있다. 최근 미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던 재정절벽 협상도 결국 의회에서 판이 벌어졌다. 북한의 핵 위협, 일본과의 과거사 논쟁을 겪고 있는 우리로선 미 의회를 소홀히 다룰 수 없다. 그런데 의원들은 속성상 지역구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 전역에 포진한 200만 한국계 유권자의 힘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한국을 이해하는 핵심 의원 몇 명만 확보해도 협상력이 달라진다. 그 점에서 시민참여센터 모델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유대계와 중국·인도계의 경우 정부 관계자를 지방에 파견하고 기업들을 총동원하는 방식으로 의회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우리도 이벤트 중심의 고공 외교에만 몰두하지 말고 미국 의회를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 과정은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 효과가 당장 나타나진 않더라도 평소의 노력은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