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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하지 않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바로 며칠 전에 우리기업체 정보를 캐내서 일본상사에 팔아먹은 사람이 흥신업 단속법위반과 사기혐의로 잡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요즘 흥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옛날엔 「정탐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정탐꾼은 옛날에도 많았던 모양. 도서관서가를 찾아 융희 4년(1910년) 3월 달의 대한 매일신문을 펼쳐 본다.
융희 4년3월이면 합병되기 5개월 전 사사조의 구슬픈 가락으로 풀어나가는 「시사평론」이란 단평에 이런 대목이 있다. 『슬프도다, 한국 내엔 정탐꾼의 세계로다. 한번 정탐 해다 주고, 돈 몇 푼씩 받는 맛에, 무슨 일을 보았든지 무슨 말을 들었든지, 보물이나 얻은 듯이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차례차례 가록하여 나는 듯이 달려가서 여차 여차 고발하니…』
신문단평은 예나 지금이나 약간의 풍자와 수사의 묘를 발휘해서 재미가 나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전연 엉터리없는 낭실일 수는 없다. 위에 인용한 단편이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면 정직하게 살기를 원하는 백성에겐 숨막히는 일이었을 게다. 보는 대로 들은 대로, 어디엔가에 가서 일러바쳐서 필경 무고한 백성을 못살게 굴던 그와 같은 무리들을 「임시정탐」이라고 정의하고 「시사평론」은 다음 가락으로 넘어간다. 『슬프도다 한국 내엔 정탐꾼의 세계로다. 외인에게 충심 있고 외인에게 아첨하여, 외인에게 수족되며 외인에게 개가되어 동포 보면 원수 같이 대소사를 물론하고 빼놓잖고 정탐하여 여차 여차 고발하니…』 이런 무리는 「상비 정탐」이라고 했다. 국운이 날로 쇠퇴해 가고 인심은 갈 바를 모르고 어수선하기만 하던 때 동포를 저버리고 외인의 수족이 된 인간들을, 열띤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써 엄중히 꾸짖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반세기 이전의 옛일이고, 이번 일을 다스리는 데에는 민족주의니 애국심이니 하는 것보다는 현행법에 비추어 범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냉정히 가리면 족하다. 다만, 우리끼리 마저 지켜져야 할 비밀을 캐내서 돈을 받고 남에게 팔아 넘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슬픈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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