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김응룡 '충격'… 인터뷰도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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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 타자가 삼진을 당하자 그는 인터뷰도 마다하고 황급히 더그아웃을 떠나 곧장 버스에 올랐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생애 처음으로 가져본 패배의 쓰라림, 그 독한 침묵의 시간은 몸서리쳐지듯 쓰리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불패 신화’ 김응룡 감독도 결국 삼성의 한(恨)을 풀어주진 못했다.

삼성에게 김감독은 희망의 메신저였다. 지난해까지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기에 9번 우승의 김감독을 5년간 13억원이라는 초유의 몸값을 주며 스카우트해 온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할 때까지도 삼성의 베팅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그도 삼성도 짐작하지 못했다.

김감독은 완벽주의자다. “유니폼을 입고 더그아웃에서 앉으면 대통령도 눈에 안 들어올 것”는 주위사람들의 말처럼 그의 모든 촉각은 오직 경기에만 쏠려 있다. 그런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기는 야구’를 버티게 해 준 든든한 투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3년엔 이상윤이, 80년대 중반부턴 선동열이, 그리고 97년엔 이대진이 ‘김응룡 신화’를 이어가게 했다.

올시즌 삼성이 무리수를 써가며 갈베스를 데려온 것도 ‘우승 보증수표’를 원한 김감독의 의중을 따른 것이다. 갈베스는 정규시즌 ‘괴인’투구로 김감독의 신화를 재현시키는 듯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갈베스는 어깨 부상에 허덕이며 무너졌다. 그리곤 도미노처럼 임창용도, 배영수도, 김진웅도 차례차례 허물어졌다. 움츠렸던 삼성의 ‘악령’이 결국 김감독의 온몸을 휘감싼 것이다.

김감독은 이미 60대에 접어들었다. ‘패자의 절망’을 맛본 그가 새로운 야구인생을 열 수 있을지, 그건 김감독에게 남겨진 또하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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