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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관저도 ‘불통의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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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도쿄 나가타초에 위치한 일본 총리관저. 지상 5층, 지하 1층 구조로 총리집무실은 꼭대기층인 5층에, 주요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각료회의실은 4층에 위치해 있다. [지지통신]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에 있는 일본 총리의 집무실 ‘총리관저’가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든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3일 보도했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공간이 분리돼 ‘구중궁궐’을 연상케 한다며 청와대에 쏟아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비판이 일본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상 5층, 지하 1층인 일본 총리관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시절인 2002년 완공됐다. 사실 일본의 총리관저는 효율성 측면에서 우리 청와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 관저 5층에 총리집무실, 우리의 대통령 비서실장 격인 관방장관과 관방 부장관의 집무실, 비서관실, 회의실 등이 모여 있다. 바로 아래층인 4층에 내각회의가 열리는 각료회의실이 배치되는 등 2개 층에 국정 사령탑 기능이 집중돼 있다. 대통령실장이나 수석들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본관으로 이동해야 하는 청와대와는 집중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들은 “관저가 둔하기 짝이 없다”거나 “소통 없는 관저 구조가 총리의 고립을 초래한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요미우리는 ‘잃어버린 관저 10년’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먼저 관저 내부에 벽걸이 시계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꼬집었다. 총리관저는 설계 당시부터 외관과 내장 모두 ‘일본다운 단순미를 추구한다’는 기조 아래 꾸며졌다. 관저를 찾은 외국 손님들에게 일본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박물관 또는 미술관적 컨셉트에 주안점을 뒀다. 벽에 시계를 건다는 발상 자체가 어려웠다.

 회의실도 마찬가지다.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직후 ‘부흥구상회의’가 관저 4층 대회의실에서 매주 열렸다. 일각을 다투는 원전대책과 부흥대책을 논의하는 회의실에 시계가 걸려 있지 않아 신속한 의사결정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당시 부흥구상회의 의장 대리를 맞았던 미쿠리야 다카시 도쿄대 객원교수가 “벽에 시계를 걸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사무실 간 장벽도 제기된다. 위기관리와 보안의식이 강조되며 직원들은 모든 사무실에 출입할 때마다 IC 카드를 이용해야 한다. 면적은 옛 총리관저보다 두 배나 넓어졌는데 이런 제약이 있으니 직원들이 얼굴을 맞대고 의사소통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하드웨어적 문제점에다 문제 개선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경직된 관료문화, 총리의 역량 부족, 관료와 총리의 불협화음이란 소프트웨어적 부실까지 겹쳐 전반적인 관저 리더십 약화로 이어졌다고 일본 언론들은 진단한다. 특히 대지진 발생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지하의 위기관리센터가 아닌 집무실에 머물며 호통만 친 사례는 ‘고립된 리더십’의 전형으로 비판받고 있다.

 미쿠리야 교수는 “조직으로서 ‘관저’의 기능이 온전치 않은 것은 건물로서 ‘관저’의 결함과 상관관계가 있다”며 “관저 내부의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쉽게 옮겨 다니지 못하면 총리집무실이 고립되고, 결국 총리 자신이 고립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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