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생인데 … 초과근무, 밤새 일한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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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울산해경이 콘크리트 타설 작업선 침몰사고로 숨진 고교생 홍성대군의 시신을 실종 16일 만에 인양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홍군이 과도한 근로를 했는지 조사 중이다. [사진 울산해양경찰서]

지난달 울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콘크리트 타설 작업선에 탔던 특성화고 실습생들이 근로기준법 기준을 초과한 장시간 근로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계기관이 조사에 나섰다. 울산고용노동지청·해경은 3일 “침몰한 석정36호에 탔던 실습생들의 사용주인 석정건설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석정36호 침몰 사고로 탑승자 중 10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사망자 중엔 전남 순천의 특성화고 3학년 홍성대(당시 19세)군이 포함됐다. 배에서 함께 현장실습 중이던 동급생 2명은 구조됐다. 홍군의 아버지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회사가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초과 근무를 요구했다”며 “사고 당일에도 교대 시간(오후 6시30분)을 넘겨 다음 날 아침까지 근무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석정건설 박모 대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한 기자에게 "할 얘기가 없다”며 끊었다.

 정부가 고졸 취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특성화고 학생의 현장실습 여건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3학년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교육과학기술부와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제도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학교의 현장실습 사전교육 의무화 ▶하루 7시간 근무 ▶주 2일 휴무 보장 ▶업체와 학생의 근로계약 체결 등의 골자였다.

 그러나 실습 여건과 근로 조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광주의 특성화고 3학년인 A군은 지난해 10월부터 경북 구미의 휴대전화 부품회사에 다녔다. 학교에서 배운 전공은 도장이었으나 막상 맡은 일은 부품 조립이었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을 일하던 그는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임동헌(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광주전자공고 교사는 “실습생 90%는 기업에서 온 공문을 보고 보내는데 이들 기업 상당수는 성인 근로자를 구하기 힘들 만큼 열악한 곳”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실습 참여율을 높이려다 보니 ‘질 관리’가 잘 안 된다”고 걱정했다. 정부의 고졸 취업 장려책에 따라 특성화고에 대한 시·도 교육청 평가에서 취업률이 중요한 잣대가 됐다. 서울의 특성화고 진로교사는 “취업률을 높이려면 경험과 취업 기회를 함께 얻을 수 있는 현장실습을 보내야 한다”며 “기업에서 의뢰 공문이 오면 타교에서 먼저 갈지 몰라 급히 학생에게 전달 한다”고 털어놨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해 2월 실시한 설문 결과 실습생의 평균 급여는 월 124만원에 그쳤다. 10인 미만 영세사업장도 23%에 이르렀다. 가정·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실습하는 일도 많다. 전남의 62개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 33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타지에서 근무 중이다.

 감독의 손길도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고용부·교과부는 “교육청·학교와 함께 적극 지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실습 합동 점검은 지난해 11월 단 한 차례에 그쳤다. 권기승 서울 성수공고 교사는 “교과부는 현장실습에 대한 사전 교육을, 고용부는 업체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론 업체 선정을 개별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 차원에서 기업과 학교를 이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길·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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