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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2)|해토머리|조지훈|이랑길 새봄은 농자의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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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칩이 지나면 산하도 긴 동면에서 깨어난다. 개울물 소리는 갑작스레 높아지고 싱그러운 바람결에는 새들의 밝은 우짖음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뛰어 나왔던 개구리가 쉽사리 물러가지 않는 추위에 놀라고 햇살 바른 가지 끝에 뾰족이 내밀었던 새싹이 도로 움츠린다 해도 봄소식은 이미 산하에 그 입김, 그 손길을 스치며 조용히 다가오는 것이다.
해토머리의 갈라진 땅은 흐뭇한 물기로 솜같이 부드러워진다. 이 가난한 토양에서나마 푸진 가을을 염원하는 어설픈 일년지계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선다. 시달리고 쪼들린 살림살이에도 낙망하지 않는 순한 마음 위에 봄은 소생의 꿈으로 흥겨워진다.
메마른 산하가 초록빛으로 물들면 꽃은 또 예대로 난만히 피어날 것이다. 씨 뿌리고 못자리하고, 바쁜 일손에 새벽 별 보고 들에 나와 해진 뒤 달빛아래 돌아오는 사람들은 봄빛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허기진 장장춘일을 풀뿌리, 나무껍질로 명상을 이으려면 아득한 보릿고개를 두고 봄은 그대로 잔인하기만 할 것을.
잃어버린 고향. 잊어버린 흙 냄새에 산하의 봄소식 그 동면을 아지랭이 같은 수심이 앞을 가린다. 사랑하마 세월이여, 이 황토기슭에 비바람이나 고르로와 풍성한 가을을 점지하기를-. 어느 때에나 이 가난한 산하도 이마의 주름살을 활짝 펼 것인가.
봄은 이랑을 타고 온다. 대지에 훈훈한 입김이 퍼지는, 지금은 씨뿌려는 계절. 알알이 새 풍요를 가꾸는 보람에 들판의 일손은 마냥 바쁘다.
두렁가래질에 우공의 힘줄이 불끈 솟고 『어허 이랴!』 맑고 우람한 목소리에 들은 생동한다. 온 가족이 들에 나서서 바쁜 한나절.
지금은 4월, 그처럼 넓은 들녘에 봄빛이 가득 차면 저절로 자연은 농자의 것. 농자의 마음. 씨를 뿌리고 풍요를 거두는 농자는 거리낄 것 없는 천하지대본이라 했다. 우리네 농자는 2천5백년 전부터 농사거리의 터전을 닦아왔다. 가위, 채취에서 이경으로 버젓이 자연을 갈아왔던 것-.
이미 조상은 철제괭이와 따비로 낙랑의 준평원에서 밭갈이를 했고 오곡을 심어 강가의 성대를 누릴 줄 알았다. 또 둑을 정교하게 쌓아 올려 물을 담고 때맞춰 관개를 한 「백제지」를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진한 때에는 고사리, 사노리란 벼의 품종마저 개량, 씨나락을 가릴 줄 알았다는 기록. 그때는 어디나 농노에게 갈아붙일 비옥한 땅이 있었고 아무도 그 땅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땅의 임자는 농자였다. 그러던 것이 임자에 차츰 변화가 생겨났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릴 줄도 모르는 「틈입자」가 뛰어들었다.
끝내 호강은 순하디 순한 농자의 땅을 빼앗기 시작했고 경지 위엔 「부자와 빈자」란 계층도 새로 생겨났다.

<봄조차 빼앗겼던 수난>
심지어 일제 정36년간은 땅의 소출을 지주란 계급한테 송두리째 도조해야만 하는 때도 있었다. 3·1「퍼센트」의 지주가 적어도 77「퍼센트」의 소작농을 지배하던 그 때.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우리의 시인 이상화는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겼네』-빼앗긴 들과 봄을 읊었다. 이 겨레의 수난기였고 더우기 농자에겐 더할길 없는 질곡의 세월이었다.
1959년. 「농지개혁법」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이 되살아났다. 스스로 땅을 갈 수 있는 농자가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탁류와 가뭄에 시달리며>
그러나 평균 경작 면적은 집계로 따져 농가호당 8.9단보. 1정보 미만의 농가가 전체 농가의 73「퍼센트」를 차지하는 비율. 좁다랗기 짝이 없는 땅의 넓이다.
때문에, 항상 「잉여 농산물 도입」 「곡가 파동」이란 숙명도 따라다녔다. 땅값조차 안되는 곡가에 농자는 고달파야했다.
또 대지는 걸핏하면 몇 10년래의 가뭄으로 목을 태웠고, 아니면 장마에 몰리는 해도 있었다. 성난 탁류는 기껏 가꿔놓은 작물을 감탕밭으로 쓸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스스로 땅을 갖고 스스로 땅을 갈 수 있는 지금은 천심의 은총에만 농사를 떠맡길 때는 아니다.
성황당에 기우제를 지내는 때는 지난 것이다.

<문명의 빛 속에 여명이>
새로 「전천후농업」이란 견문도 나오게 됐다.
다목적 「댐」을 이용, 『산을 논으로 만든다』는 「야산 개발 운동」도 벌어졌다.
허나 아직은 너무나도 가난한 농자가 내일을 저버리고 땅을 등지는 서글픔이 대지를 떠나지 않고 있다.
스스로 땅을 갈 수 있는 농자는 스스럼없이 그의 땅에 풍요를 심는 일손이 바빠야 한다. 이랑길을 타고 오는 새봄은 농자의 것,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지 않던가…. <안양에서 글="김석성" 사진="김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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