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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코리아」|케네드·캠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저자소개=「케네드·캠펜」씨는 미국「워싱턴」대학 졸, 극동문제 전문가로서 한국어·중국어·일본어에 능통하며 판문점 유전회담 당시 「유엔」측 통역, 54년의 「제네바」회담「유엔」측 통역을 역임했으며 61년까지 주한 미대사관에서 한국정부연락관으로 있었다.
한국은 이 몇 햇 동안에 많은 발전을 해왔다.
도시의 미화를 해친다기에 앞서 위험한 역병의 발생을 염려케 했던 도심지의 판자집들은 이제 별로 볼 수 없다. 대신 세워진 늘씬한 현대식「아파트」와 아늑한 교외의 주택들은 지난 몇 해를 사이에 두고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을 놀라게 한다.
먼지와 진탕으로 시민들을 괴롭히던 도로들은 교외로 내뻗는 말끔한 포장도로와 대체되었다. 제2한강교와 김포가로는 외국인에게 확실히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질주하는 차량들은 이 나라 상품의 유통속도를 상징한다.
「텔리비젼」의 화면에서 세계를 내다보고「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남산 꼭대기에 올라간다는 것은 몇 해 전 서울시민들이 흔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 성싶다. 팔각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네온사인」의 휘황한 서울의 야경은 내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디뎠던 1948년 당시의 그때와 비교가 안 된다. 「댐」의 건설은 발전량을 증대시켰고 기간공업시설은 속속 발전해 가고 있다.
경부선이나 호남선 연변의 농가들만 보아도 그 담들이 요 몇 햇 동안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말끔해졌다. 시골길을 다녀 보아도 청소가 잘 되어있다.
1956년 말부터 1958년 사이에 그러니까 백림장벽이 생길 때까지 북한의 동독유학생으로 있다가 서독으로 자유를 찾은 한국인 유학생이 26명이나 있다. 당시 나는 미국정부에 건의하여 그들에게 자유세계를 찾은 보람을 갖게 하기 위하여 서독에서 계속 학업의 길을 매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바 있다.
그들 가운데 조만형씨가 있다. 조씨는 동독탈출 후 약 3개월 동안 한국을 구경한 뒤 서독으로 돌아갔다. 그때 조씨는 한국의 발전상에 대하여 실망한 듯한 인상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조씨는 그의 인상을 다른 학생들에게도 전한 듯하다.
그때 나는 귀로에 구라파에 있는 여러 한국 유학생들과 이야기 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들도 역시 동일했다. 그러나 요사이 한국 유학생들은 훌륭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의 정신적 자세가 건전한 방향으로 바꿔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기술초급대학을 위시한 한국 정부의 기술교육 정책은 한국 정세에 알맞다고 본다. 또한 기술혁명을 통해서 사회의 개력을 초래케 한다. 몇 해 전까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고충의 하나는 적당한 관광「호텔」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관광업의 발전은 외화획득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외국인에게 좋은 한국 상을 남기는데 일조가 된다.
한국의 반공정신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제일이다. 한국의 지도층에서는 반공에 투철한 분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국민의 마음속에 간직된 반공정신의 반영이라고 보고 싶다. 이번에 월남파병을 보아도 이것은 잘 드러나고 있다.
한국인은 생명을 걸고 반공전선에 나서고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고 또 찬양한다.
내가 작년 4월에 세계일주 여행을 했을 때만 해도 한국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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