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기업 노조 개혁도 경제민주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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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일자리와 양극화 해소 다. 박근혜 당선인이 임기 중 풀어야 할 핵심 과제도 이것이라고 본다. 당선인의 핵심 공약도 그랬다.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고용의 질을 올리겠다는 ‘늘·지·오’ 공약을 내걸었고, 임기 중 150만 개의 일자리 창출도 약속했다. 양극화 해소 역시 선거 당시 누누이 강조했던 공약이었다. 게다가 이 두 가지 이슈는, 당선인이 더불어 강조했던 경제민주화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즉 일자리가 많을수록 양극화는 완화된다. 경제민주화의 목적 역시 양극화 해소이므로 일자리는 경제민주화의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게 난제 중의 난제란 점이다.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 모두 주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게 단적인 증거다. 임기 중 일자리를 200만 개(노무현 정부) 또는 300만 개(이명박 정부)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은 공약(空約)이 됐고,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지 않았던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저성장이다. 하지만 더불어 중요한 원인이 노동개혁의 실패였다. 노무현 정부가 바로 그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당시 ‘노조 편’이라고 공언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양보와 협력을 요청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완화에 성공하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필수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가진 나라일수록 고용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근로자의 60%고, 휴가나 상여금 등 근로 복지의 차별은 더 크고,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자 비율이 10%밖에 안 되는 지금의 상태로는 유연성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 당연히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완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우선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가 실업 급여와 사회보험 체계를 정비하고, 직업 교육을 강화해야 할 이유다.

 또 하나는 대기업 노조의 양보와 협력을 통해 정규직이 받는 혜택을 스스로 줄이는 방안이다. 문제는 이게 참으로 어려운 숙제라는 점이다. 노조가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을 리 만무하다. 노무현 정부 등 과거 정권이 노동개혁을 시도했지만 성과 없이 끝난 이유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도 매우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가진 나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 참조>

 그러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해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당선인이 대기업에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자제를 부탁한 건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심정이야 이해 안 되는 것 아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당선인의 선의(善意)와는 정반대로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에 역행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일어났던 정리해고는 대부분 일감이 없거나 거덜난 기업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회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리해고마저 못하게 한다면 기업은 도산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실업 대란’일 것이다. 또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혜택을 더욱 강화시키고, 이로 인해 양극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비정규직은 물론 중소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조차 정리해고 요건의 혜택을 거의 못 보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요건을 강화하면 그 혜택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만 본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당선인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노동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노조 개혁 없이는 당선인이 약속했던 일자리 창출은 공염불에 그치고,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 및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라도 노동개혁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