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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는 상흔-여섯 돌맞이 「마산의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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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날의 분노를 되새기며 어언 여섯 돌. 4월 혁명의 진원지 마산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그날의 상흔과 그 알찬 얼이 의거의 거리에 함께 우뚝 솟아 있다.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3월15일』 『다시는 그런 부정 선거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저마다 힘주어 말하는 그날의 주역들, 그 유족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3·15 여섯 돌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의거의 경위>
마산의거는 3월15일에 제1차로, 김주열군의 시체가 떠오른 3월11일에 제2차로 연이어 일어나 곧 4·19 혁명에의 연장이 되었다. 의거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선거날 민주당 마산시 당부의 독자적인 「선거 포기 선언」. 3월15일 상오 10시 이에 흥분한 군중들이 민주당시당부 당사 앞에 몰려들어 「데모」를 벌였다.
이날 해가 질 무렵 「데모」대가 선거 개표를 하는 시청 앞과 남성동 파출소 앞으로 몰려 들자 경찰은 군중들에게 물을 뿌려 해산시키려 했다. 물을 맞은 군중들은 돌팔매를 시작- 이날 밤 7시쯤부터 경찰은 군중에게 총을 쏴 댔다. 이때 60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총상을 입었고 13명이 사망, 2백여명이 연행되었다. 3·15의거에 결정적인 불길을 붙인 김주열군의 시체가 4월13일 밤 그의 고향인 남원으로 가기까지 마산은 온통 「데모」의 거리로 화했다.

<유족이 만든 3·15 선도회>가난한 아동에 온정
의거의 주동자와 그 유족들이 만든 「3·15 선도회」는 그들이 도움을 받기 전에 오히려 남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작년 4월에 태동한 이 모임은 3·15날 밤 북마산 파출소 앞서 희생된 김삼웅 (18)군의 맏형 김기태 (32·3·15 회관 총무)씨가 중심으로 회원들은 무도 의거에 참가했던 청년 13명. 이들은 거의가 현재 마산 시청에 다니고 있는데 매달 각 회원들은 1백원씩 돈을 거둬 모여진 돈으로 시내 국민학교 아동들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아동들에게 학용품을 사서 전해 주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시내 무학·성호·월포교 등 10개 국민교에 돌아가며 전해진 이 온정은 이미 한 바퀴를 다 돌아 지금부터 또 새로 돌릴 차례가 되었다고. 그의 가장 큰 소망은 「3·15 장학회」를 만들어 참된 일꾼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

<부상 여학생 이원자양>내년에는 대학 진학
3·15 부상자 가운데 단 한사람의 여자인 이원자 (19)양은 지금 마산여고 3년생. 이양은 불과 13세의 어린 나이로 목이 터져라 부정 선거를 규탄하면서 마산 시청 개표소 앞에 이르렀을 때 무차별로 쏘는 경찰의 총탄이 오른쪽 허벅다리를 꿰뚫었다. 완전히 골절된 다리는 36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부서진 뼈를 잇기 위해 다리 속에 철판을 넣은 것이 궂은 날이면 아직도 쑤시고 아프다는 것. 그래서 다리 수술을 다시 받아야 된다고 했다. 가족은 아버지 이용문 (49·상업)씨와 어머니 김종란 (47)씨, 동생 이성덕 (11)군뿐.

<의자매가 된 두 어머니>따뜻한 정 오순도순
3·15 의거 때 3대 독자를 잃은 두 어머니가 의자매를 맺어 서로 위로하며 살고 있다. 『그날의 벅찬 슬픔을 씹다 못해 서로 의지하고 싶어서』 3년 전부터 의자매를 맺었다는 두 어머니는 북마산 파출소 앞 「데모」에서 쓰러진 이효덕 (19·직공)군의 어머니 남금순 (46)씨와 마산 경찰서 앞 「데모」에서 숨진 김영길 (18·마산 상고 2년)군의 어머니 김달영 (58)씨.
모두다 원호청에서 나오는 원호금 2천3백원으로 살아가는 삶에 찌든 가난한 유족들. 그러나 가난 속에서도 이 두 어머니는 매일처럼 1「킬로」가 넘는 거리를 서로 내왕하며 친형제 보다 더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산다.
언니뻘 되는 김씨는 딸도 하나 없이 애지중지 키워오던 외아들을 잃고 70고개의 남편 김용이 (69)씨와 외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 3대째나 내려온 외아들이기에 양자 들여올 만한데도 없었다.
외로움에 지친 두 노부부는 생각다 못해 죽은 영길군의 고모의 아들 (영철·18·마산 고교생)을 작년에 억지 양자로 들였다고.
남씨는 효덕군을 잃은 뒤 남편이 정신 이상으로 집을 뛰쳐나가 버리고 효영 (20) 효순 (17) 두 딸만이 남았다. 마산 제1여중 3학년에 다니는 둘째딸 효순 양을 탈없이 학교를 마치게 하는 것만이 남씨의 유일한 소원이라 했다.

<그의 어머니만 찾는 무덤>외로운 고 김주열군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하다 쓰러진 고 김주열군의 묘지에는 찾아주는 사람 없이 악몽을 되새기는 여섯 돌을 맞아 그의 어머니 권찬주 (60) 여사만이 외로이 무덤 앞에 엎드려 김군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고 김군은 60년3월15일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데모」 대열의 앞장에서 무차별로 쏘아대는 총탄에 맞아 쓰러져 바다에 던져진 20일 후에 이곳 제1부두에 떠올라 마산 전 시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의 죽음은 바로 4·19의 불씨가 되었던 것. 【마산=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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