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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카르노」 시대의 종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11일을 전후한 정치적 분란으로 「인도네시아」의 강자 「수카르노」 대통령은 사실상 거세된 입장에 놓인 것 같다.
물론 사태는 아직 총력적이며 새로운 실권자로 등장한 「수하르토」 장군이 어떤 정치적 지향을 보일 것인지 역시 상금 불확실한 것이므로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겠지만 「인도네시아」가 이제 「수카르노」의 절대적인 권력 아래 지배되던 그러한 시대를 넘어선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거년 9·30 미축 「쿠데타」 사건 이후로 금이 간 「나사콤」 체제, 즉 민족주의와 종교와 공산주의가 공존하는 그것도 따라서 이젠 분명히 퇴색을 거듭해갈 따름이라 하겠다.
사실 반년만에 두차례나 큰 정변에 직면해야 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이미 「수카르노」의 위신의 퇴조를 상징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모처럼의 야심적 포석으로 단행했던 「나수티온」 국방상의 해임이 의외로 국내적 불안에 불을 그어대는 결과로 된 이후 그의 권능은 눈에 띄게 죄어들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항거가 날로 백열화하고 다시 그 반공 학생 「데모」에 반대하는 친공 「데모」까지 조직되는 동안 수도인 「자카르타」의 나날은 험난을 더해갔다. 게다가 이런 만성적이고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사회적 불안에 대한 군부의 반응이 이 사태를 「국가의 붕괴」라는 측면에서 짙은 우려와 함께 받아들인 것이었고 보니 「인도네시아」의 정정은 어쩔 수 없이 중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극한적 포기가 감도는 가운데 「수카르로」는 어떤 정치적 결단을 강요받게 되었던 것인데 거기에다 더욱 부채질을 한 것이 다름 아닌 군부에 의한 최후 통첩이었다 할 수 있다. 군부는 친공적인 「수반드리오」 부수상 겸 외상을 12일이라는 시한부로 축출한 것을 강경하게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사태는 이미 「수카르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악화 일로를 더듬어갔던 것이었다. 일종의 국민적 영웅으로서 「나사콤」이란 삼두마차를 압도적 지도권 아래 이끌어 나왔던, 거의 절대적 독재자 「수카르노」에게도 힘의 한계는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지난 「옹크루머」 실각 사건과 함께 중대한 역사적 효시를 이른바 급진적인 신생 국가군에 던지고 있다할 것이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허약하다는 역설적 교훈을 이 사건은 또한 웅변히 가르쳐준다.
물론 이 시점에서 그러한 역설적 교훈이 전적으로 적중 했다곤 할 수 없다. 그것은 새 실권자 「수하르토」장군이 곧 권력을 회복할 「나수티온」전 국방상과 일체가 되어 「인도네시아」의 장래를 요리하게 된다해도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수하르토」 자신이 판명한대로 급변한 극좌나 우선회가 허락되지 못할 것이므로 「수카르노」의 후광이 아직은 살아남았다고도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친공 각료들이 대량으로 축출될 것인 정세 아래서 「수카르노」가 기적적으로 모든 권력을 전처럼 회복할 도리는 없을듯하다.
「인도네시아」는 벌써 「수카르노」의 시대에서 벗겨나 서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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