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투수 보호해야 야구 묘미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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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가 한창 뜨거운 메이저리그 디비전 시리즈를 보면 '야구는 투수 놀음'이란 말이 정말 실감난다.

15일까지 진행된 16경기에서 양팀의 투수들이 펄펄 날아야 가능한 1-0 경기가 세번이나 나왔다. '투수전의 백미'로 불리는 1-0 경기는 야구에서 사라져가는 '천연기념물' 같은, 영화로 따지면 단 한 순간도 방심을 용납하지 않는 '스릴러'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5백32경기 가운데 1-0 경기는 두번 밖에 없었다. 확률로 따지면 1%가 안된다. '똑딱이 타자' 정수근(두산)이 홈런을 때릴 확률(0.42%)보다 더 낮은 0.37%다.

이처럼 보기 드문 1-0 경기가 단기전에서 자주(?)나오는 이유는 단기전일수록 선수들, 특히 투수와 타자의 집중력이 함께 높아질 경우 공을 손에 쥔 투수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자기가 공을 '주문'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고 투수가 '던진' 공을 쳐야 된다. 그렇다면 누가 더 유리한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더라도 판가름이 나는 셈이다.

'투수들의 득세'는 사실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에서부터 조짐을 보였다. 올시즌 메이저리그는 아메리칸리그(AL)3명.내셔널리그(NL)4명 등 7명의 20승 이상 투수를 배출했다. 7명이나 나온 것은 1980년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팀 방어율도 양대 리그 모두 낮아졌다. AL 4.91에서 4.49, NL 4.63에서 4.33으로 낮아졌다. 볼넷이 줄어 들고 삼진은 많아졌다.

메이저리그는 80년대 이후 장거리 타자가 늘어났고 홈런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장의 규모를 줄였다. 그로 인해 홈런은 증가했지만 야구는 고유의 색깔을 잃었다. 이에 일부에서는 "메이저리그가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멀리치기 경연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메이저리그는 올해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 투수들의 기살리기에 힘을 기울였다. 올해 포스트시즌의 '1-0 스릴러'들은 그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가 야구 고유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반면 국내 프로야구의 투수들에게 올해는 고난의 해였다. 최다승을 거둔 신윤호(LG)와 손민한(롯데)의 성적은 고작 15승에 불과하다. 93년 조계현(두산.당시 해태)의 17승을 가볍게(?) 깨뜨린 역대 다승 1위 최소승수 신기록이다. 그만큼 위력적인 투수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팀 방어율도 4.71로 역대 2위다.

반면 팀 타율은 0.274로 지난해(0.270)보다 높아졌다. 프로야구 20년 동안 두번째로 높은 팀 타율이다.

프로야구 대어급 투수들은 멈추지 않고 해외로 나가고 있다. 또 힘있는 외국인 타자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야말로 '멀리치기 게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고객을 유혹하는 가장 큰 힘은 제품의 질이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홈런이 펑펑 터져나와 투수들이 못견디며 쓰러지는 반쪽짜리 제품으로는 인기 회복에 한계가 있다. 야구 본래의 색깔을 찾으려면 투수들을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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