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진자타법'을 포기한 이치로

중앙일보

입력

'디비전 시리즈가 재팬 시리즈보다 더 쉽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1차전을 마친 후, 일본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말을 던졌다.

이 말을 미국의 매스컴 관계자가 들으면 상당 수준의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말이다.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메이저리그의 야구 수준을 얕보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기 때문.

이치로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말을 언급한 진의는 다른 곳에 있다.

재팬시리즈의 경우에는 정규 시즌이 종료한 후에 열흘 이상의 공백기가 있어서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는데 반해, 메이저리그의 경우 시즌 종료와 거의 동시에 포스트 시즌에 돌입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 실패로 인한 타격감 저하의 문제만큼은 간단하게 해소되었다는 의미다.

결코 메이저리그 야구 수준에 대한 '평가절하'의 의미로 봐서는 안된다.하지만, 이치로의 재팬시리즈와 디비전 시리즈에서의 성적을 놓고 비교해 본다면 그 표면적인 의미만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을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다.

퍼시픽리그에서 7차례나 타격왕을 거머줬던 이치로의 재팬시리즈의 성적은 신통치 않다.

노무라 감독(현 한신 타이거스 감독)의 야쿠르트 스왈로스에게 패해 시리즈 패권을 놓쳤던 95년이나 나가시마 감독이 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꺽고 재팬시리즈에 등극했던 96년이나,19 타수 5안타로 타율은.263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현재의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타율.545','장타율.636'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위의 성적만 본다면 분명 재팬시리즈가 메이저리그의 디비전시리즈보다 쉬운 건 사실.

그렇다면 재팬시리즈에서 이치로가 상대한 야쿠르트와 요미우리의 투수진이 과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투수진보다 강한 것일까?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이치로가 이번 시리즈에서 3개의 안타를 뽑아낸 클리블랜드의 에이스 바톨로 콜론이나 C.C 사바시아 수준의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에서도 20승 이상이 가능한 특급투수임에 의문을 달 사람은 없을 것.

결국 디비전시리즈에서의 맹활약의 원인이 이치로 본인에게 존재하지 않고서는 다른 곳에서 그 원인을 설명할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이치로는 올 시즌 초,메이저리그로 옮기면서 그는 엄청난 변화를 추구했다.바로 자신이 7년간 일본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하면서 고수했던 '진자 타법(振子打法)'을 버리는 최대의 모험을 시도했던 것.

'진자 타법'이란 오 사다하루(현 다이에 호크스 감독)이 요미우리 선수 시절 타격폼으로 고안했던 '외다리 타법'을 토대로 이치로가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킨 독특한 작품.

진자 타법과 외다리 타법과의 차이점은 타격 예비 동작시 들어올리는 우측 다리가 구부러지는 외다리 타법과는 달리 이치로의 '진자 타법'은 축족이 아닌 우측다리가 펴진 채로 타격 예비동작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결국 이치로는 진자 타법을 통해서 타격의 파워를 배가시키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고,일본에서 타율과 홈런 양산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진자 타법으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150킬로 대 광속구에 적응하기엔 투구 반응 속도면에서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미리 간파해버린 것.이치로는 스프링캠프에서 7년간 고수해 온 '진자 타법'을 버리고 한달 여의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이번에는 자신을 타격폼에 맞춰 나갔던 것.

결국 진자 타법을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서 버릴 수 있었던 과감한 '결단력'과 단기간동안 수정타격폼에 오차없이 적응해버린 '천재성'이 바로 '(디비전 시리즈가) 일본시리즈보다 더 쉽다.'고 이치로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해준 배경이 된 셈이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은 선천적인 것에도 기인하지만 그의 후천적인 자기 계발이 뒤따랐기에 가능했던 것.

이치로는 초등학교때 이미 피칭 머신의 스피드를 130킬로미터에 설정하고 타석의 위치를 앞으로 당긴 후 체감상으로 140킬로미터의 위력을 가지는 볼로 타격 연습을 했을 정도로,재능만을 믿고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그가 일본에서 활약할 당시에 공언해 화제가 되었던 "스트라이크의 70%는 안타로 만들 수 있다."라는 그의 타격관이 결코 근거없는 주장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임을 2001년 디비전 시리즈를 통해 이치로는 여실히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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